에세이

강원도민일보 칼럼 - 어느 재벌회장의 비밀금고

샤론의 꽃 2017. 3. 15. 16:56

 

어느 재벌회장의 비밀금고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들오리 이야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른 봄 들오리들이 여름을 나기 위해 지중해에서 노르웨이로 날아가다가 중간의 어느 호숫가에서 휴식을 취하게 된다. 며칠 뒤에 들오리들은 다시 목적지를 향해 날아갔지만 한 마리는 집오리들과 어울려 노는데 정신이 팔려 그대로 남았다. 어느날 들오리는 늦었지만 먼저 떠난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하늘을 날려고 서둘렀으나 몸이 너무 불어 날 수 없었고 결국은 주인의 식탁에 오르는 최후를 맞고야 말았다.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한 눈을 팔거나 구습의 사슬을 끊어버리지 못해 불행을 자초하게 된 이야기는‘말뚝에 매인 코끼리’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서커스단에 팔려 올 때부터 말뚝에 묶여 있던 아기코끼리는 어른이 돼서도 좀처럼 작은 말뚝을 뽑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잘 길들여진 강아지 마냥 얌전히 굴게 된다. 처음 말뚝 뽑기에 실패했던 경험이 코끼리의 의지를 완전히 꺾어놨기 때문이다.

 

40년 지기란 사사로운 인연의 사슬에 매여 최순실의 비리와 국정개입을 방조한 대통령의 어처구니 없는 실수는 탄핵의 빌미가 되었고, 이는 국민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부끄러운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일본의 어느 재벌회사 회장실에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비밀금고가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금고에 실패한 사례들이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실패를 겪으면서 흘린 통한의 눈물과 자책, 반성, 절치부심(切齒腐心) 등의 안타까운 심정이 함께 담겨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비밀금고 안에 허접한 물품들은 넣어두지 않는다. 값비싼 보석이나 현금뭉치, 유가증권 아니면 꼭꼭 숨겨 두어야 할 비밀문서 등등... 아직도 행방이 묘연한 최순실의 빨간 금고 안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을까 자못 궁금해진다.

 

실패라는 역사의 비망록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는 절묘한 역발상과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우리는 성공을 위해서 반드시 실패학을 공부해야 한다. 실패는 당장은 입에 쓰지만 시간이 지나면 체질을 강화시키는 보약이 된다. 그러나 같은 실패를 반복하는 것은 자신과 조직을 스스로 파멸시키는 자살행위나 다름 없다.

 

이제 탄핵 정국의 막이 내리고 숨 가쁜 조기 대선의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이번 사건은 전대미문과 사상초유라는 꼬리표가 달려있는 만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의미 깊게 장식할 것이다. 나라를 뒤흔든 대통령 탄핵사건을 이념갈등이나 진영논리로 재단해서는 안 되며 국가지도자들은 한층 자기관리에 충실함으로써 본분과 사명을 철저히 완수하여 누군가의 식탁에 오르는 살찐 들오리가 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후대가 오늘날과 같은 참담한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대통령 기록물을 비롯한 이번 사건의 전말을 밝힐 모든 사료들을 보관,관리하는 데 있어 한 점 의혹도 남지 않도록 엄정을 기해야 마땅하다. 역사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자 국가와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이기 때문이다.

 

2017년 3월 21일

김경중(문화평론가, 국가혁신포럼 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