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김경중 칼럼 - 광고천재의 봄 이야기

샤론의 꽃 2017. 3. 22. 20:12

 

 

광고천재의 봄 이야기

 

30여 년 간 수많은 광고를 만들어 오면서 내가 느낀 광고의 최고 가치는 예술성이다. 물론 이 말은 교과서적으로 보면 반쪽의 정답에 불과하다. 광고는 본질적으로 마케팅의 도구이자 과학과 예술의 유기적인 결합체이기 때문이다.

 

광고천재 데이비드 오길비를 아는가? 일찍이 1960년 대 애꾸눈 신사를 모델로 한 '헤더웨이' 셔츠 광고 하나로 광고천재란 명성을 얻었고 브랜드 이미지 광고의 창시자가 되었다. 나는 세상의 허다한 광고인 중에서 이 사람을 가장 좋아한다. 영국의 명문 옥스퍼드 대학을 가정사정으로 중퇴하고 요리사, 막노동꾼, 농부, 외판원 등 닥치는대로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하고 난 후 여러 광고회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모두 실패하고 스스로 창업의 길을 선택하여 대성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가장 좋은 광고는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다'고 믿는 경험주의자이며 광고를 “15초의 예술”로 명쾌하게 정의해 버린 천재 중의 천재요 현대광고의 아버지로 불리운다.

 

누가 고급 와이셔츠 광고에 애꾸눈을 등장시킬 수 있겠는가? 경쟁사가 잘 생기고 호감이 가는 멋진 모델을 등장시켰을 때 오길비의 허를 찌르는 역발상은 보는 이들에게 신선한 시각적 충격 뿐 아니라 한 쪽 눈을 검은 안대로 가린 사나이의 전력에 대한 궁금증과 상상력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하였다.

 

눈길을 확 끄는 비쥬얼, 가슴에 팍 꽃히는 짧은 카피 한 줄이 기업과 제품의 운명을 바꾸고 심지어는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무엇이든 팔지 못하면 망하는 무한경쟁 사회에서 광고는 이제 기업경영에서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무기가 돼버렸다.

 

광고는 직설화법보다는 비유와 상징의 옷을 입힌 소프트 셀(Soft Sell) 화법이 훨씬 효과적이다. 그리고 무미건조한 설명식보다 재미와 의미를 겸비한 스토리텔링 광고가 소비자의 기억 속에 파고 들기 쉽다. 만약 정직을 주제로 한 광고를 만든다면 세상에서 제일 정직했던 위인의 이야기를 지루하게 풀어가는 것보다 거짓말을 할 때마다 코가 길쭉해지는 안데르센 동화 속의 피노키오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훨씬 더 빠르고 강하게 어필될 것이다.

 

광고는 재미있고 독창적이며 감동적이어야 한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일수록 광고는 제품이 아니라 환상을 팔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브랜드가 곧 자신이며 광고 속 주인공의 라이프스타일이 곧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일치되도록 환상을 심어주고 소유욕을 강하게 부추긴다. 그러나 우리가 TV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광고는 진솔한 소비자의 삶속에서 아이디어를 찾고 스토리를 만들어 ‘아, 저게 바로 내 얘기구나!“하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쏟는다.

 

엄청난 매체비를 투입하여 각종 미디어를 통해 내보내는 광고가 실패할 경우 해당제품은 물론 광고주에게도 치명적인 손실을 입히게 된다. 일년에 한 번 열리는 미국의 슈퍼 볼 광고야말로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30초 광고에 물경 60억원이나 든다니 슈퍼 볼 광고의 위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그러나 해마다 시즌이 되면 이 CF 광고 한 편을 내보내기 위해 세계적인 광고회사들이 사활을 건 청약 전쟁을 치루고 있다.

 

다시 광고천재 오길비 얘기로 돌아가 보자. 어떤 번화한 길가에서 앞을 못 보는 걸인이 동냥을 하고 있다. “저는 앞을 볼 수 없습니다. 한 푼만 도와 줍쇼” 종이에 이런 글을 써붙이고 행인들에게 적선을 청하지만 그들의 바쁜 걸음은 멈추게 하지는 못 했다. 이 때 한 신사가 걸인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만년필을 꺼내 종이에다 새로운 문구 하나를 써서 붙여놨다. “참 아름다운 봄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을 볼 수 없어요” 문구 하나 바꿨을 뿐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걸인 앞에 지폐가 수북히 쌓이기 시작하였다. 행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여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발상으로 공감대를 이끌어 낸 오길비의 멋진 카피이다.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합리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얼음이 녹으면 봄이 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창의적인 사람이다.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유쾌한 역발상을 끄집어낼 줄 알며 늘 열린 마음으로 소비자와 대화하는 사람들... 그들이 곧 소통과 표현의 달인 광고인들이다.

 

21세기 꿈과 이야기를 파는 주역으로서 우리 삶의 작은 단편들을 무심히 흘려보내지 말고 새로운 관점으로 꼼꼼히 챙겨보자. '관심이 곧 돈이다'라고 설파한 어느 경제학자의 말대로 그곳에 돈이 되는 아이디어란 보물이 숨겨져 있다. 광고의 주체는 물건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임을 잊지 않는다면 누구나 창의적인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경중(문화평론가, 카피라이터, 국가혁신포럼 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