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시100선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44) - 비밀의 문
샤론의 꽃
2016. 5. 9. 21:42
비밀의 문
숨고 싶다
새들이 떠난 빈숲
비 젖은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여린 잎새 하나로
고요히 흔들리고 싶다
숨고 싶다
망망대해 속 일엽편주
튀어오르는
물거품 하나로
하얗게 부서지고 싶다
숨고 싶다
크로노스, 그 째깍거리는
찰라의 시각
초침 밖으로
불현듯 벗어나고 싶다
숨고 싶다
아무도 모르는 그곳
어둠의 닻을 내리고
말 못하는 짐승처럼
웅크려 울고 싶다
머리카락 보일세라
내 누추한 백발,
삭도로 깨끗이 밀고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
그 묵묵한 침묵 속으로
호올로 들어가
비밀의 문
걸어 잠그고
홀연히 숨어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