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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강원도민일보 칼럼 - 블랙리스트 유감

 

 

 

블랙리스트 유감

 

재작년 가을 강원도 화천에서 집필활동에 여념이 없는 소설가 이외수 선생을 만나 뵐 기회가 있었다. 평소 통찰력이 남다른 작가의 책들을 탐독했고 선생의 자유로운 예술혼과 라이프스타일을 좋아해온 터라 점심식사를 함께 하는 내내 흥미진진한 대화가 이어졌다.

 

여러 차례의 힘든 항암치료를 받은 후였고 감성마을의 촌장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선생은 시간을 쪼개 부인과 영화조감독으로 일하는 아들까지 대동하여 그 특유의 해학과 거침없는 달변으로 우리를 환대해 주었다.

 

 

나는 국가혁신포럼 대변인 자격으로 집행부 임원들과 동행했는데 때마침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가 자행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그런지 선생은 먼저 국가안보에 대한 걱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일부 보수층에서 선생을 좌파 예술인이니 정치선동꾼이니 하며 요주의 인물로 낙인 찍고 있는 것을 알기에 오히려 북한의 연이은 무력도발을 규탄하고 화천이란 군사접경지역에서 해마다 세계평화안보문학축전을 개최하는데 크게 이바지하고 있는 면면을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느끼기까지 하였다.

 

 

선생은 우리에게 이런 말을 물어 왔다. "외국인들은 알고 있는데 우리는 모르는 세 가지가 있다. 무엇인지 아느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동석자들에게 선생은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 주었다. 첫째, 우리가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 둘째, 우리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셋째, 우리가 얼마나 잘 버티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혁신과 소통의 아이콘이라 자타가 공인하는 선생의 입에서 의외로 보수적인 색채가 짙은 질문과 답이 나와 흥겹던 자리가 잠시 엄숙해졌지만 곰곰이 되씹어보면 대체로 수긍이 가는 말이다. 지금도 트위터 대통령답게 160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확보하고 있는 선생의 촌철살인적인 글 한 줄 말 한 마디가 수많은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때로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때로는 부정과 부패에 대한 힐난과 돌직구를 날림으로써 그 동안 역대 보수 정권으로부터 미운털이 단단히 박혀왔지만 그것이 블랙리스트에 오를 정도로 위협적인 것인지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2015년 10월 2일 국회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이외수 작가 초청 제3차 국가혁신포럼 기조연설에서 선생은 또 다시 '우리가 모르는 세 가지'를 언급하며 든든한 국방안보와 건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국가혁신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당시 새누리당 대표였던 김무성 의원이 축사를 통해 선생의 시대적 통찰과 혜안을 높이 평가했으며 보기 일반 청중들과 함께 드물게 보수와 진보를 망라하여 여야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함으로써 선생에 대한 높은 관심과 인기를 실감케 하였다.

 

 

선생은 얼마 전 모 종편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MB정권 때 블랙리스트에 오른 소감을 묻는 앵커의 질문에 “굉장히 불쾌하다, 북한과 다를 바 없다"며 자신의 불편한 속내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또한 "국정원이 나를 젊은이들을 선동하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라며 방송출연과 강연 등에서 불이익이 이었음을 증언하기도 하였다. 

 

아무쪼록 이번 파문을 계기로 독재시대에나 있을 법한 비민주적인 행태들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한 진상규명과 후속조치가 따라야 할 것이며 당면한 사회 현상을 직시해 볼 때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반대편을 찍어내는 '블랙리스트'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쉰들러 리스트'임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