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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시100선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16) - 갈대밭

 

 

갈대밭

 

가슴이 시린 날에는

세월교* 근처

갈대밭으로 가자

 

바람이 낮게

흐르는 곳

은빛물결로 흔들리는

갈대들을 만나보자

 

가을햇살이

마른 풀잎 위로

하얗게 부서지는 오후

 

갈대의 야윈 가슴에

귀를 대고

흐느끼며 우는 소릴 들어보자

 

바람이 사방으로 구르는

강 언덕에 서서

 

더러는 구겨지고

더러는 짓밟혀 꺾여 있는

상한 갈대의 허리를

일으켜 세우자

 

참혹한 가을의 현기(眩氣)처럼

풀씨들은 어지럽게 흩날리고,

흩날려 버리고

 

잘 가거라, 잘 가거라

마른 손을 흔드는

자욱한 슬픔의 갈대밭

 

*세월교: 춘천시 동면 소양댐 물줄기 위에 놓여있는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