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엘리트 교육보다 더 시급한 EQ교육-교회가 나서야 한다.

샤론의 꽃 2008. 8. 2. 13:21

2008년 7월 31일자 주요 일간지들은 강남 주민들의 몰표에 힘입어 서울시 첫 민선 교육감에 당선된 공정택 씨 기사를 1면 톱으로 올려 놓았습니다. 전 날 치러진 교육감 선거가 15.5%라는 최악의 투표율을 기록한 가운데 전교조의 지지를 받고 고군분투한 주경복 후보에게 2만 여표라는 간발의 차이로 집권 여당 성향의 공 후보가 당선된 것입니다.

공정택 후보가 내세운 공약을 살펴 보면 그 동안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자 했던 교육정책을 그대로 답습한 것으로, 자립형 사립고, 특목고 확대 등 학교 다양화와 학교 경쟁력 강화, 교원 평가제 도입, 그리고 초중등 영어몰입 교육 실시 등 전반적으로 자율과 경쟁을 근간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날 선거 결과에 그 동안 여러 가지로 수세에 몰려있던 한나라당이 모처럼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고 희색이 완연하였고, 사교육 시장을 주도하는 학원 경영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쌍수를 들어 환호했습니다.

강남에 살면서 천정부지로 늘어만 가는 사교육비에 치를 떨고 지방으로 내려와 아이들 셋을 몽땅 고등학교까지 졸업시켰던 저로서는 이번 교육감 선거의 결과에 대해 큰 실망감을 금할 수 없지만 이왕 엎지러진 물이니 만큼  이 정책으로 인해 피해를 보거나 소외된 계층의 아이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새로운 교육감은 다수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세부 계획을 면밀히 검토하여 운영의 묘를 잘 살려 주길 바랄 뿐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마음이 착잡하게도 같은 날자 일간지에는 상습적으로 폭력을 일 삼던 여고생들이 경찰에 검거된 기사가 눈길을 사로 잡고 있었습니다. 함께 등교하기를 꺼리고 거짓말 한다는 이유로 여고생 세 명이 같은 학년 여고생 한 명을 5시간 가량 집단 폭행하고 강제로 변기물을 마시게 한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더욱 경악을 금치 못 했던 것은 이런 엽기적인 범죄 행위를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직접 휴대폰으로 동영상 촬영까지 한 것입니다.

이들 여고생들은 사건 발생에 앞서 서울 중구의 한 노래방 근처에서도 여중생 박모양과 눈이 마주치자 '나이도 어린 게 쳐다본다"며 화장실로 끌고가 폭행을 한 뒤 현금 6만원을 빼앗고 폭행장면을 휴대폰으로 촬영한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이들은 경찰서에 잡혀가서도 "재미삼아 그랬을 뿐이다"라며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가 전원 사법처리 되기도 했습니다.

어디 이 뿐이겠습니까? 아직도 일선 학교에서 수많은 문제를일으키고 있는 불량 폭력 서클인 일진회가 제거되지 않고 여전히 독버섯처럼 자라나고 있는 등 학원 폭력의 피해는 도를 넘어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정도로 심각한 실정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점점 삐뚤어 지기만 하는 우리 아이들의 인성과 잘못된 교육 환경을 바로 잡지 않고서 일부 소수 학생들을 위한 엘리트 교육이 국가백년 대계를 위해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입니다.

몇 해 전 우리나라에서도 EQ(Emotional Quotiont, 감성지수)열풍이 휩쓸고 지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매스컴마다 EQ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해댔고, 학교에서도 앞다투어 아이들의 창의력 계발과 정서함양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에 열을 올렸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러다 슬그머니 끓던 냄비물이 식어버리듯  EQ 열풍은 가라앉아 버리고 또 다시 극심한 학습 경쟁 체제로 전환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 학부모님들의 자녀 교육열은 세계에서 으뜸갈 정도로 높습니다. 자식을 가르치고 출세시키기 위한 일념은 눈물겨울 정도로 뜨겁습니다. 아니 자식교육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희생이라도 감수할 각오가 돼 있고, 그것만이 그들의 삶에서 유일한 낙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입니다. 특별한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로서는 ‘사람이 전부’라는 생각을 갖고 교육에 열을 올리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칼히게도 부모들의 교육열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우리 사회는 점점 더 병들어 가고, 살맛을 못 느끼며 방황하는 아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청소년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라는 사실이 이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참교육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에너지원인 창조성 교육은 실종되어버린 지 오래고, 오로지 좋은 대학에 집어넣기 위한 입시위주의 교육만이 판을 친 결과라 생각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제는 제가 학창시절에 귀가 따갑게 들었던  참되고, 진실되고, 성실하고, 착하고, 서로 사랑하고, 희생하고, 봉사적이고, 남을 배려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부지런하고,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심신이 건강한 젊은이들이 되라고 하시는 스승의 말씀은 어디에서도 들어볼 수가 없는 학교의 모습이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모두들 현재의 우리나라 교육이 무언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다는 데에는 공감하고 있습니다만 정부도 학교도 가정에서도 어디서부터 꼬인 매듭을 풀어야 할지 해결방법을 찾지 못하고 난감해할 따름입니다. 교육부 수장이 바뀔 때마다 미래 교육의 청사진도 장밋빛으로 바뀝니다만 그 누구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이룩해내지는 못했습니다.

교육은 100년 앞을 내다보는 지혜와 일관성을 갖고 추진해야 하는 데, 그저 단발성 미봉책이거나 용두사미로 끝나는 행정력 부재의 초라한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웃나라 일본이나 이스라엘의 경우도 국가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첫 순위가 교육에 대한 투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하고는 달리 교양 있고 예의바른 세계시민을 만들기 위한 인성교육과 앞선 미래로 향한 창의성 계발에 교육의 중점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어렸을 적부터 철저한 EQ교육을 시켜왔다는 말씀입니다.

EQ교육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격, 품성, 도덕성, 윤리성, 협동성, 창조성, 참을성 등이 모두 다 연관돼 있습니다. 교만하지 말고 늘 겸손하라는 선조들의 가르치심과 불굴의 도전정신과 개척정신을 통해 이룩해온 찬란한 문화 예술의 업적도 다 여기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도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EQ가 높은 사람들입니다. 특히 국가와 사회의 지도자가 된다거나 예술가가 된다거나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EQ 지수가 대단히 높아야만 합니다.

통계에 의하면 개인적 성공에도 IQ가 20%, EQ가 80%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따라서 IQ만 높고 EQ가 낮은 사람은 혼자서 하는 일에는 전문가가 될 수 있어도 남과 더불어 사회활동을 하기에는 부적합한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그리고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 중에도 지능지수보다는 감성(정서)지수가 높은 학생들이 많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공부를 잘 하려면 정서가 안정되어야 하고, 주의가 산만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의 우등생이 사회에서 열등생이 되는 경우는 EQ가 낮은 사람일 경우일 터이고, 성공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IQ도 높지만 EQ도 높은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학교 교육의 방향은 분명해지지 않겠습니까?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일본이나, 독일, 이스라엘 민족처럼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덕목과 기본소양을 우선적으로 잘 가르치고, 먼 미래를 바라보며 창조성을 중요시하는 꾸준하고 일관성 있는 EQ교육을 실시해야 합니다.

차가운 이성과 따뜻한 감성을 겸비한 창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세계 시민으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갖추기 위한 더 많은 EQ교육프로그램의 개발과 투자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만약 국가와사회가 이러한 일들을 외면하고 방치한다면 우리 교회라도 나서서 아이들의 심령을 살리고, 올바른 삶의 목적을 갖게 해주는 기독교식 인성교육에 앞장 서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무장된 우리 아이들만이 악한 세력들을 이기고, 이 시대를 짊어질 참된 리더로서 보석 같이 빛날 것이며 더 나아가 열방에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知.情.意 모든 면이 바르게 균형 잡힌 능력있는 일군으로 살아 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빛도 없이 소리도 없이 묵묵히 교회 학교를 위해 헌신, 봉사하고 계신 주일 학교 선생님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내 드리고 싶습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