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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의꽃

오늘처럼 추운 밤 오늘처럼 추운 밤 오늘처럼 추운 밤, 내 마음이 누울 곳을 찾아 헤매는 떠돌이새 한 마리 품어 줄 따뜻한 둥지가 될 수만 있다면 늦은 밤, 언덕길을 오르며 마주치는 허공 속의 붉은 십자가 앞에서 조금은 덜 부끄러워질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처럼 추운 밤 내 마음이 갈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 한 마리 품어 줄 눈물 젖은 가슴이 될 수 있다면 이른 아침, 두 손을 얹으며 기도하는 낡은 성경책 앞에서 조금은 덜 죄스러워질 수 있을 것 같다 더보기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63) - 희생양 희생양 하루에 한 번 쯤 몰래 만나 포옹하고 한 주에 한 번 쯤 몰래 만나 입 맞추고 한 달에 한 번 쯤 몰래 만나 뜨겁게 죄를 짓던 우리 어느 날 아침 불쑥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치뜨며 말했다 "우리 이제 없었던 일로 해요" 그녀는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뒤도 돌아 보지 않은 채 휑 하니 사라져버렸다 원, 세상에... 神이 아닌 이상 무슨 재주로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로 통째로 무를 수 있단 말인가 너와 내가 저지른 숱한 죄들을 없었던 일로 단번에 날려버리기엔 우리의 비밀을 알고 있는 새앙쥐들이 너무 많아 그러나, 있었던 일을 있었던 일로 솔직히 까발린다면 우리는 너무나 부끄러워 둘 다 혀를 깨물고 죽고 말거야 그래서, 우리 같은 어둠의 자식들에겐 대신 죄 값을 치르고 착하게 죽어줄 흠없는 어린 양이 필.. 더보기
배려 월요일 새벽, 춘천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첫기차를 타고 부족한 잠을 청했다. 듬성듬성 빈 자리가 남아 있는 기차 안에서 사람들은 너나할 것이 잠을 청하기에 바빴다. 긴장이 마냥 풀린 내 몸도 이내 달콤한 잠 속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고요하고 평안하기만 했던 기차 안의 상황은 갑자기 반전되고야 말았다. 느닷없이 울리기 시작한 핸드폰 벨 소리 하나가 사람들의 마음을 서서히 짜증으로 뒤흔기 시작한 것이다. 날카로운 핸드폰 벨 소리에 선 잠을 깬 나는 장장 10여분이나 이어진 젊은 여인의 높은 옥타브의 대화로 인해 불쾌감이 머리 꼭대기까지 치밀어 올랐다. 어느덧 기차는 가평을 지나 청평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잠 잘 생각을 포기하고, 아직도 미명 속에 잠겨 있는 어두운 창.. 더보기
겨울 꿈 겨울 꿈 꽃이 피는 겨울 꿈, 눈이 내린다 산새도 잠이 든 새벽녘, 돌 틈 사이로 휘파람 소리를 내며 흐르는 개울 근처에선 마음씨가 깨끗한 눈꽃들이 무성히 피어나고 있다 흐린 하늘엔 봄날, 민들레 홀씨처럼 풀풀 눈이 내려 나무들을 하얀 솜이불로 덮어 주고 있다 지금도 가끔씩, 눈 내리는 밤이면 호올로 깊은 잠에 빠져 설탕 한 줌의 아득함처럼 겨울 꿈을 꾸곤 한다 더보기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40) - 플라타나스 플라타나스 한 개의 나뭇잎도 달려있지 않은 플라타나스가 있습니다 나뭇잎도 없이 견디는 겨울내내 플라타나스는 속힘으로 새잎을 만들어 갑니다 봄이 올 때까지 맨몸으로 버티며 새잎을 만들어 가다가 새로 만든 속잎이 돋아오르면 플라타나스는 혼자 또 쓸쓸히 산성비를 맞게 될 것입니다 겨울은 길고 길가의 플라타나스는 매우 춥습니다 더보기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28) - 내 마음속의 풍경 내 마음속의 풍경 1. 낡은 동화책 속에는 깊은 밤 들려주시던 할머니의 이야기가 들어있지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는 깊은 산골의 산바람 몇 줄이 숨어 있지 밤에 책을 펴들면 나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게 되지 잦은 기침 소리에서 할머니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오늘 저녁에도 우리 집 근처의 땡감나무엔 떫은 땡감 하나가 까치들을 기다리고 있지 2, 낡은 동화책 속에는 사립문 밖에 걸린 방패연 하나가 있지 할머니집 바위 틈에 숨겨 둔 선녀의 옷꾸러미가 보이지 낡은 동화책을 뒤적이면 우리집 마당에 떠다니는 낡은 바람소리가 들리지 낡은 바람 속에는 할머니의 땀냄새가 나는 속옷 속 주름진 젖무덤이 숨어 있지 더보기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87) - 신호등 신호등 가라시면 가고 서라시면 서고 하라시면 하고 말라시면 말고 앞서라시면 앞서고 뒷서라시면 뒷서고 때마다 고비마다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말씀의 신호등 한 눈 팔지 말고 의심하지 말고 지시하실 땅으로 담대히 나아가라 광야에서도 사막에서도 낮이나 밤이나 주의 길로 이끄시는 구름기둥 불기둥 더보기
지도자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한 마리 뱀이 있었습니다. 뱀의 꼬리는 언제나 머리가 가는대로 이끌려 갈 수 밖에 없도록 맞붙어 있었습니다. 어느날 꼬리가 불만을 터뜨리며 머리에게 말했습니다. "왜 나는 언제나 네 꽁무니를 무조건 따라다녀야 하고, 언제나 너는 네 마음대로 나를 끌고 다니는 거지? 이건 너무 불공평한 일이야. 나도 역시 뱀의 한 부분인데 언제나 노예처럼 끌려다니는 건 말이 안된다구." 그러지 머리가 말했습니다. "그런 멍청한 소리는 그만해. 너에게는 앞을 살피거나 분간할 수 있는 눈도 없고, 위험을 탐지할 귀도 없고, 행동을 결정할 뇌도 없지 않니. 나는 결코 나 자신을 위해 그러는 게 아니야. 언제나 널 생각해서 데리고 다닐 뿐이야." 그러지 꼬리가 비웃는 듯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햇습니다.. 더보기
旅情 旅情 막차로 돌아온 사람들이 다시 첫차로 떠나간다 잡초를 뽑은 자리에서 다시 파릇파릇한 것들이 돋아나듯 삶이란 끝없이 반복되는 고단한 순례의 旅情이 아닌가 첫차로 떠나간 사람들이 다시 막차로 돌아오는 겨울 밤, 남춘천역 허름한 임시역사 앞에는 따끈한 군밤 몇 봉지 손을 호호 불며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 더보기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29) - 군자란 군자란 촛불처럼 얼굴이 붉은 꽃 화안한 마음의 불씨만으로 피어나는 꽃 오늘아침 문득 한 송이 불씨를 틔워올린 꽃 어둠을 밀어낸 군자란 붉은 꽃 빛으로 오시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