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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김경중 장로의 믿음의 오솔길에서(4) - 모두 다 살색입니다

 모두 다 살색입니다

 

내가 재직했던 학교에서 실용음악과 외래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던 인순이 씨는 아프리카계의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한 대표적인 혼혈가수입니다. 그녀 역시 다른 혼혈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차별과 놀림을 받으며 어린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런 그녀가 몇 해 전부터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을 위해 직접 다문화 교육 행동가로 나섰습니다.

 

인순이 씨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강원도 홍천군 명동리에서 다문화 대안학교인 해밀학교의 문을 열고 본격적으로 학교운영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해밀학교라는 이름에는 뜻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비온 뒤 맑게 갠 하늘" - 이름처럼 이곳은 어떠한 사회적, 교육적 차별이나 제약 없이 다문화 가정 어린이 누구나 맑고 푸른 꿈을 안고 공부할 수 있는 배움터이자 꿈터입니다.

해밀학교는 다문화 가정을 위한 중, 고교 통합 6년 과정의 기숙형 대안학교로 다문화 가정 자녀들의 내적 상처를 치유하면서 정체성을 확립하고, 다중언어 사용의 장점을 살려 글로벌 인재로 성장하도록 하는 건학이념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인순이 씨는 개교식에서 “그림 그리기가 취미인데 오래 전부터 우산을 즐겨 그려왔다.”며 “비오는 날 우산을 함께 쓸 수 있는 사람은 그만큼 가깝고 보호해주고 싶은 사람이다. 이제껏 내 딸에게만 씌워주었던 우산을 이제 더 많은 해밀학교의 아들, 딸들을 위해 씌워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차 오른다”고 소감을 밝힌 바 있습니다.

 

그녀는 평생 3가지 고통을 안고 살았다고 합니다. 첫째는 몸서리 쳐지는 가난이요 둘째는 못배움의 한이요 셋째는 혼혈이라는 이유로 남보다 더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었던 환경입니다. 그 중에 차별이 가슴에 가장 큰 상처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내가 아는 인순이 씨는 내노라는 국민가수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늘 겸손했고 따뜻했으며 밝은 심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수업을 하러 온 인순이 씨를 본 학생들이 반가운 마음에 "야, 인순이다!"라고 예의없이 막말을 했는데 그 말을 들은 인순이 씨가 학생들을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애들아, 인순이가 뭐니, 앞으로 인순이 언니라고 불러줘"라며 밝고 환한 웃음을 지었다는 에피소드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일전에 내가 만난 정치지도자의 말이 생각납니다. 그녀는 미국의 명문 로스쿨 출신이자 크리스천이기도 하였는데 자신은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의 교육이 중요해요. 정부나 국회가 앞장 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칫 잘못하다간 그들은 미래의 시한폭탄이 될 수 있어요." 

 

그녀는 다문화 가정의 소중함과 아이들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나머지 반어법으로 시한폭탄이란 부정적인 표현을 쓴 것으로 보이지만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결코 동의할 수는 없어서 열을 내는 그녀의 말에 가타부타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다문화 가정들은 아웃사이더도 아니고 미래의 시한폭탄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저 우리와 같은 조건에서 평등하게 경쟁하며 더불어 살아야 할 보통시민들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편협한 마음과 왜곡된 시각이지요.

 

우리 아이들은 얼굴이나 피부색을 칠할 때 살구색을 칠합니다. 백인 아이들은 흰색을 칠하고 흑인 아이들은 검은 색을 칠할 것입니다. 우리의 피부색만을 살색이라고 고집하는 것은 편견에 불과합니다. 모두 다 살색이고 모두가 아름다운 피부색입니다.

 

우리에겐 다문화 가정의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말로만 걱정하는 지도층 인사들보다 인순이 씨와 같이 묵묵히 자신을 헌신함으로써 그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고 상처를 보듬어주는 사랑의 섬김이들이 더 필요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위의 꿈'은 비전을 품고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적 리더십에 의해 이루어짐을 잊지 맙시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며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이사야 4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