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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김경중 장로의 믿음의 오솔길에서(5) - 청산도 달팽이


 

 

청산도 달팽이

 

어린이 그림성서를 보면 노아의 방주에 마지막으로 느릿느릿 기어오르는 달팽이의 모습이 나옵니다. 느림보 달팽이가 어떻게 방주에 들어와 물심판을 면할 수 있었을까요? 첫째는 별로 쓸모없이 보이는 달팽이일지라도 끝까지 기다려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때문이요, 둘째는 달팽이의 믿음과 인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만약 선착순 입장이었다면 달팽이는 절대로 구원의 방주를 탈 수 없었을 겁니다.

 

전남 완도에서 뱃길로 약 50분 정도 가면 청산도란 섬이 한 폭의 풍경화처럼 눈 앞에 펼쳐집니다. 산, 바다, 하늘이 모두 푸르러 청산(靑山)이라 이름 붙여진 작은 섬. 기억 속의 그대 눈빛처럼 해맑고 따스한 섬. 몇 해 전에 20여 명의 동우회 회원들과 함께 했던 추억이 지금도 쉼표 하나로 반짝이는 섬.

 

 

 

자연경관이 수려하여 예로부터 신선이 노니는 곳, 선산(仙山)이란 별칭을 갖고 있는 청산도는 지금도 느림의 풍경과 섬 고유의 전통문화가 어우러져 연중 내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2007년 12월 1일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이곳 청산도는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한데 대표적인 작품으로 '봄의 왈츠'와 '서편제'를 들 수 있습니다. 3월의 파릇파릇한 청보리, 4월의 노오란 유채꽃과 5월의 붉은 양귀비가 절경을 이루어 나그네의 시선과 마음을 뺏기에 안성마춤입니다. '슬로길'을 오르는 길 주변의 구들장 논과 구불구불 돌담길, 그리고 남해바다를 끼고 걷다 간간이 마주치는 해녀의 미소는 청산도를 대표하는 상징코드일 뿐 아니라 이곳이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곳'임을 여실히 증명해 줍니다.

 

"김형, 왜 여긴 곳곳에 달팽이 그림이 그려져 있을까?" 함께 둘레길을 걷던 친구가 내게 물어왔습니다. "아, 그건 이곳이 '슬로길'이라 달팽이처럼 천천히 걸으라는 뜻이 아닐까?"라고 내가 대답하자 친구는 "아, 맞아! 내가 깜빡했네. 김형 우리 여기저기 구경하며 천천히 걸읍시다. ㅎㅎ"라며 박장대소 했습니다. 일행들은 토끼처럼 잰 걸음으로 저만치 앞서 갔지만 느릿느릿한 달팽이들의 행보가 오히려 당당하게 느껴졌습니다.

 

 

다음날 아름다운 풍광과 별미의 음식, 여유로운 일탈의 시간을 뒤로 한 채 다시 배를 타고 청산도를 나와 버스로 이동하면서 '느림의 미학'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일찌감치 방주에 들어간 동물들과 나중에 가까스로 들어간 달팽이를 견주어 보았습니다. 지나 온 세월 동안 누구보다 바쁘고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저 바람 한 끗 스쳐지나 간 자리일 뿐 아쉬움만 남습니다. 열정은 있었으나 지혜가 부족했고, 욕망은 강했으나 쥐고 보면 한 줌 햇살보다 못한 것들이었습니다.

 

완행열차를 타고 가든 급행열차를 타고 가든 나름대로 장단점은 다 있습니다. 좋은 쪽을 바라보고 편하게 마음 먹으면 어떤 선택도 다 옳은 것입니다. 본질은 속도보다 방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행복총량의 법칙'이 가르쳐 주듯이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복을 주시고 '포도원 주인과 품꾼'의 비유처럼 하나님의 계산법은 인간의 계산법과는 다름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 남은 여생은 나의 생각이나 행동이 당신의 선하신 뜻보다 앞서지 않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데살로니가 후서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