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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김경중 장로의 믿음의 오솔길에서(8) - 발자국 함부로 어지럽히지 마라

 

 

발자국 함부로 어지럽히지 마라

 

어느 바닷가 바위틈에 살던 엄마게가 처음으로 아기게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어요. 그런데 아기게가 자꾸 옆으로 걷는 것이었습니다. 걱정이 된 엄마게는 아기게를 조용히 나무랐어요. "그렇게 걸으면 안 돼! 나를 따라서 이렇게 걸어보렴"

 

그런데 아기게는 엄마게의 시범을 보고도 여전히 옆으로 걸었어요. 엄마게는 자기가 옆으로 걷는 줄도 모르고 아기게를 야단치면서 "그렇게 걷지 말라니까! 엄마를 따라서 이렇게 걸으란 말이야!" 그러나 아기게는 계속 옆으로 걸었고 단단히 화가 난 엄마게는 "아가, 도대체 왜 그러니? 옆으로 걷지 말고 엄마처럼 이렇게 똑바로 걸어보라니까! 이렇게!"

 

그러자 아기게가 눈물을 글썽이며 대답했어요. "난 엄마가 가르치는 대로 열심히 따라하고 있어요. 보세요, 엄마가 걸어온 발자국과 내 발자국이 똑같잖아요." 엄마게는 모래밭에 난 발자국을 살펴보고 깜짝 놀랐어요.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모래밭엔 아기게의 말대로 옆으로 난 발자국들이 나란히 찍혀 있었어요. 엄마게는 얼굴이 새빨개지며 차마 아기게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어요.

 

 

'이솝 우화'에 나오는 재미있는 이야기지만 내용을 곰씹어볼수록 이 글 속의 엄마게처럼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의 티끌은 어찌 그리도 잘 찾아냈는지, 그리고 주제 넘게 남을 가르치려고만 들었는지...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자화상 뿐입니다.

 

 

우리 선조들의 가르침 중에 ‘척(隻) 지지 말라.’라는 덕목이 있습니다. ‘척’이란 상대를 업신여기고 미워하고 조롱하여 마음에 상처를 주거나 남을 힘으로 억눌러 억울하고 원통하게 만듦으로써 생기는 좋지 않은 관계를 의미합니다.

 

척이 지면 결과적으로 원한이 쌓이고 보복이 따르게 마련이지요. 보복은 또다른 보복을 불러와 급기야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지간이 되고 맙니다. 이러한 척은 대부분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의 잘못으로 인해 생기는 것이므로 각별히 사·언·행(思·言·行)에 신중을 기해야겠지요. 입술의 30초가 가슴의 30년이 된다는 명언도 있듯이 남과 척을 지지 않도록 항상 덕이 안 되는 언행은 삼가고  자나깨나 말조심, 또 말조심을 해야 할 것 같네요. 따뜻한 격려와 칭찬의 말 한 마디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음도 물론 잊지 말아야 하고요.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태복음 5:42-44)

 

또한 내가 남긴 발자국 하나가 내 자손과 후대들이 보고 걸어야 할 이정표이기에 제멋대로 비뚤비뚤 걸어 길을 어지럽히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나이는 들어 보폭은 다소 좁아지고 속도는 늦어지더라도 푯대를 향한 방향감각 만큼은 무뎌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래 전에 읽었던 옛시 한 수가 지금에 와서 마음에 착 감기는 걸 보니 요즘세상이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혼돈과 불확실성의 시대가 틀림없는가 봅니다. 비록 연약한 믿음일지라도 한 걸음 한 걸음 기도하며 나아갈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동행하시고 날마다 성령의 열매들을 풍성히 맺게 하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때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발걸음 함부로 어지러이 하지 마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걸어간 이 발자국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