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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김경중 장로의 믿음의 오솔길에서(3) - 나무야 나무야

 

 

나무야 나무야

 

젊어서는 숲보다 나무를 보게 됩니다. 나이가 들수록 나무보다는 숲 전체를 아우르는 눈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시대와 세월을 관통하여 나무와 숲을 동시에 관조할 수 있는 비법이 있습니다. 바로 고 신영복 선생의 ‘나무야 나무야’와 ‘더불어 숲' 두 책을 만나게 되면 말입니다.

 

‘나무야 나무야’는 신영복 선생이 우리 국토를 여행하면서 쓴 글이고 ‘더불어 숲’은 세계기행을 다루고 있습니다. 두 책 모두 저자가 마음이 닿는 어딘가로 가서 누군가에게 편지를 띄우는 형식으로 보고 듣고 느낀 점들을 진솔하게 기술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내가 이 책들과 만나게 된 순서는 ‘더불어 숲’이 먼저이고 ‘나무야 나무야’가 나중입니다. 그런데 우연치 않게도 두 책 모두 내가 출석하는 교회의 담임목사님으로부터 선물받은 것입니다.‘숲’은 큰 아들이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날 때였고,‘나무’는 이태 전 낙상사고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였습니다.

 

모두 다 힘들고 예측불가의 상황에서 만난 책들이라 두고두고 그 때를 회상하며 틈틈이 꺼내 읽고 있습니다. 그 중 ‘나무’는 병실에서 만난 어느 환자와의 사연까지 더해져 책의 부피처럼 결코 가볍지 않은 상념의 무게를 얹혀 주고 있습니다.

 

25편의 국내사적지 중 어느 한곳 가슴에 절절히 사무치지 않는 곳이 없지만 나는 태백산 소광리 소나무숲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인상에 남습니다. 당신이 나무를 더 사랑하는 까닭(태백산맥 소광리 소나무숲)

 

‘태백산맥 속의 소광리 소나무숲에서 소나무를 보며 경복궁 복원을 위해 잘라낸 소나무를 생각하며, 생산자인 식물과 최대의 소비자인 사람에 대해 말하고 있다.

처음으로 쇠가 만들어졌을 때 세상의 모든 나무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나 어느 생각 깊은 나무가 말했다. 두려워 할 것 없다. 우리들이 자루가 되어주지 않는 한 쇠는 결코 우리를 해칠 수 없는 법이다.‘

 

나는 발 수술을 마치고 2인실에서 5인실로 병실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나보다 훨씬 발상태가 심각한 중환자(?)들이 장기입원하고 있었습니다. 나이는 나보다 훨씬 아래지만 작업장에서의 고공낙상 등으로 발뼈가 으스러져 조각조각을 잇는 대수술을 받을만큼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다들 장기입원으로 상당히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듯 보였고, 그 중 50대 건장한 사내는 이미 방장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습니다. 군기가 잡혀있었고 입실환자들은 그의 말에 순순히 복종하는 모양새였습니다. 모두 당뇨환자임에도 불구하고 밤마다 오리구이와 약간의 알콜이 곁들인 파티가 벌어지기 일쑤였습니다.

 

나는 그러한 병실문화에 적응하기도 어려웠고 마음도 내키지 않아 그 파티에 동참하지는 않았지만 동변상련의 마음으로 많이 먹어도 혈당이 오르지 않는다는 훈제오리구이를 기꺼이 한 턱 쏴 신고식 아닌 신고식을 잘 치렀습니다. 그 다음 날 아침부터 이 50대 방장의 태도가 싹 달라져 연장자인 나를 형님으로 깍듯이 모시면서 식기를 치워주는 등 정성껏 수발을 들어 주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목사님께서 심방을 오셔서 기도하신 후 두 권의 책을 놓고 가셨습니다. 이 친구는 무료했던지 ‘책 좀 빌려볼 수 있습니까?’하고 물어왔습니다. 나는 두 책 중에‘넘치는 매력의 사나이 예수’라는 책제목에 더 시선이 끌려‘나무야 나무야’를 그 친구에게 선뜻 내주었습니다.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을 무렵, 그 친구 침상에서 조용히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연한 흐느낌은 점차 강도가 세져서 얼마 후 거의 통곡에 가까운 울음소리로 변했습니다.

 

병실에는 마침 나와 방장 단 둘밖에 없었던터라 참으로 어색한 분위기였지만 속으로 책 한 권 읽다가 저렇게까지 눈물 흘리며 감동을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그 친구의 행동을 곁눈으로 유심히 지켜보았습니다. 그 친구는 한참을 울다가 책을 덮더니 멋적은 얼굴로 나에게 말을 건네왔습니다.“형님, 이 책을 읽다가 죽은 아내가 생각나서 마음이 울컥했어요”

 

나는 대꾸할 말을 찾는 대신 잠시 그에게 혼란스러운 눈길을 보냈습니다. ‘아니 아내는 왜 일찍 죽었고 어떤 장소, 어떤 대목에서 그렇게 울컥했든가?’ 묻고 싶었지만 끝내 묻지는 못했습니다. ‘사진 한 장에도 편지 한 통에도 다 저마다의 사연과 추억이 깃들어 있는 데 어찌 영원한 이별을 했다해서 그 흔적마저 다 지울 수 있겠는가?’라고 나 자신에게 반문해 보았습니다.

 

신영복 선생의 ‘나무야 나무야’는 단순한 유적답사기나 기행문이 아닌 사실과 진실을 아우르는 양심의 소리였고 시대와 인물에 대한 애증이 교차하는 깊은 통찰의 명상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어느덧 대학졸업반이 된 딸 아이 하나를 남겨두고 홀연히 저 세상으로 떠나간 아내, 그리고 큰 낙상사고로 딱히 돌봐줄 사람도 없이 오랫동안 병원신세를 지고 있는 남편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상기하며 잠시 우리가 살아가면서 진정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그 가치를 어떻게 실현해 나가야 할 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어느 여행지에서 그 부부가 그토록 못잊을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 두었는지 풀리지 않는 궁금증을 접고 못내 아쉬운 마음으로 이 책을 덮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립보서 4: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