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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김경중 칼럼 - 광장(廣場)과 계곡(溪谷)

 

 

광장(廣場)과 계곡(溪谷)

 

역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분노한 민심의 촛불은 진눈깨비와 비바람에도 꺼지지 않았다. 26일 광화문 광장 일대를 가득 메운 150만 개의 촛불은 예상대로 어둠을 사르며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헌정 사상 집회기록을 경신할 정도로 최대의 인파가 운집했지만 세계가 놀랄만한 평화롭고 질서정연한 시위문화로 자리잡았다. 한 마디로 밀실의 어둠을 몰아낸 촛불들의 위대한 승리였다.

 

그러나 이러한 성숙한 시민의식에도 불구하고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지난 한 달 동안 게이트정국, 안개정국, 촛불정국, 탄핵정국 등 연일 수식어를 갈아치우며 정국(政局)시리즈를 이어갔지만 어떤 곳에도 진정한 참회나 반성의 눈물자국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대미문의 국기문란 및 국정농단 사태가 일어났음에도 누구하나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다. 당사자인 대통령마저 청와대 측근에게 “내가 무엇을 잘못했느냐?”라고 따져물으며 억울해 하고 있다니 국가최고지도자의 상황인식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다.

 

꼬일 대로 꼬인 정국에 민생은 뒷전으로 밀려났고 경제는 파탄에 이를 지경이다. 장기불황으로 인한 경기침체, 청년실업의 증가, 가계부채 급증 뿐만 아니라 서민의 발을 묶어놓고 있는 철도 파업의 끝은 언제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하지만 대화와 타협은 오고간데 없고 사태 해결을 위해 진두지휘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모두 다 사리사욕과 제 밥그릇 챙기기에만 혈안이 돼있고 국민의 고통과 불편함은 안중에도 없다. 점점 콩나물시루로 변해가는 지옥철(地獄鐵)에 몸을 떠맡길 때마다 “이게 나라냐?“라는 불평과 탄식이 절로 나온다.

 

대통령은 각계각층의 원로들을 만나 현 시국에 대해 자문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대통령의 입에서 국민이 납득할만한 해명과 비상시국에 대한 로드 맵은 나오지 않고 있다. 검찰조사를 거부하며 국민과 척을 지고 있는 대통령에게 더 이상 ‘내 탓이오’라는 말을 기대하는 것은 물 건너 간 일인 것 같다.

 

구치소에 수감된 피의자들도 모르쇠나 ‘남 탓’으로 돌리기는 마찬가지이다. 심지어는 현 정권의 고위관료로 온갖 특권과 호사를 누렸던 사람들마저 모든 것을 다 대통령의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며 책임을 전가하고 있으니 최소한의 예의와 염치도 찾아볼 수 없는 막가파정권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듯 싶다.

 

이런 절해고도(絶海孤島)에 고립무원(孤立無援) 상태에 놓인 대통령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야나 탄핵만이 능사인가? 사사로운 인연에 국정을 농락당한 대통령을 뽑은 우리 국민은 아무런 책임도 없는 것인가? 이 시대의 지성이라고 자처하는 대학교수나 언론인, 종교지도자들, 그리고 양식있는 시민사회단체의 리더들은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다 했는가?

 

연일 외신 국제면의 톱을 장식하고 있는 우리 대통령의 부끄러운 모습이 노출 될 때마다 그 동안 눈부신 경제발전과 한류문화 확산 등으로 국격을 높여왔던 대한민국의 위상은 끝없이 추락하고 말았다.

 

이러한 국가브랜드이미지 실추는 가히 천문학적 수준의 기회손실일 뿐 아니라 경제발전의 동력을 상실하게 만드는 최대의 적이다. 이 엄중한 상황을 단순히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말로 치부하며 한가롭게 두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인가?

 

분노한 민심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시간에 수많은 개신교회나 성당, 사찰 등지에서는 국가의 안위와 시국의 안정을 위해 눈물 뿌려 기도라도 드려야 되지 않겠는가?

 

촛불은 바람에 쉽게 꺼지지 않는다. 다만 옮겨 붙을 뿐이다. 성난 민심의 촛불을 끄는 유일한 방법은 대통령의 진정한 사과와 자신이 그토록 주장해 오던 사법정의에 순응하는 일이다. 그리고 나라와 대통령을 올바르게 지켜주지 못한 우리모두의 통렬한 반성과 참회의 눈물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촛불은 엄동설한(嚴冬雪寒)에도 맹렬히 타오를 것이다.

 

가뭄이 들어 세상이 모두 타들어 가도 계곡의 물만은 마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계곡은 제일 아래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노자(老子)가 꿈꾸었던 위대함은 근엄하고, 군림하고, 강압적인 것이 아니라 부드럽고, 낮고, 따뜻한 계곡정신(溪谷精神)이다. 이 계곡의 정신을 노자는 도덕경에서 곡신(谷神)이라고 했다.

 

새로운 세상을 보려면 이전의 눈을 버려야 한다. 내적 거듭남이 없이는 우리는 더 이상 사물을 창조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 지지율 4%로 이미 통치 권력을 상실한 대통령을 향한 촛불이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도구로 빛날 때 비로소 우리는 더 밝고 정의롭고 따뜻한 대한민국을 다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2016년 11월 28일

김경중(문화평론가, 국가혁신포럼 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