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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김경중 칼럼 - 대통령의 리더십, 그리고 빈 자리

 

 

대통령의 리더십, 그리고 빈 자리

 

최순실 게이트가 전대미문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일파만파 번지면서 대통령의 리더십이 치명타를 맞고 있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수족처럼 움직이던 검찰이 정면으로 대통령을 압박하고 나섰고, 집권여당의 대표를 지낸 인사마저 자신이 야당보다 먼저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하겠다고 비수를 들이대고 있으니 국가최고지도자인 대통령의 권위는 무참히 구겨진 채 저자거리에 내팽겨쳐지고 말았다.

 

각종 언론에서 경쟁하듯이 연일 터뜨리고 있는 대통령 및 최순실 관련 보도들은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킨다는 미명 하에 엉뚱한 상상력이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가십거리들로 가득 차있어 오히려 이번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반작용을 야기하고 있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급기야는 최순실을 17년 동안이나 모셨다는 운전기사의 증언마저 터져나와 세간을 시끄럽게 만들고 있다. 최순실이 박 대통령에게 ‘지가 아직도 공주인줄 아는가 봐, 엄마!’하는 차마 믿기 힘든 뒷담화까지 폭로되었고, ‘최순실이 보스야, 보스!’라고 하는 운전기사의 멘트가 최순실의 정체성을 여과없이 드러낸 것이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듯 싶다.

 

과연 최순실은 보스인가? 박 대통령과 그녀의 아버지 최태민 간의 사적인 인연에 편승하여 호가호위하며 개인의 영달을 위해 대통령을 이용해 왔던 그녀는 도대체 어느 조직의 보스인가 되묻고 싶다.

 

운전기사는 마지막 멘트에 최순실을 ‘사악하다!’고 표현했다. 이 앞 뒤 문장을 연결하면 결국 ‘최순실은 사악한 보스기질을 가진 나쁜 여자다’고 단정 지을 수밖에 없다.

 

일찍이 미국의 제34대 대통령을 지낸 아이젠하워는 라더십이 뭐냐고 묻는 친구에게 보스와 리더의 차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아이젠하워는 친구에게 실을 책상 위에 갖다 놓고 당겨보라고 했다. 친구가 실을 당기자 팽팽해지며 끌려왔다. 이번에는 뒤에서 밀어보라고 했다. 친구는 열심히 밀었지만 실은 굽혀질 뿐 밀리지 않았다. 아이젠하워가 말했다. ‘리더는 밀지 않는다. 다만 당길 뿐이다.’실을 당기면 이끄는 대로 따라오지만 밀면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있게 된다. 사람들을 이끄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스는 뒤에서 호령하지만 리더는 앞에서 이끈다.

 

보스는 "가라!"고 말하지만 리더는 "가자!"고 말한다.

보스는 겁을 주며 복종을 요구하지만 리더는 희망을 주며 힘을 끌어낸다. 보스는 대화와 타협을 거부하지만 리더는 기꺼이 대화하고 타협한다. 보스는 자기가 내뱉은 말을 쉽게 뒤집지만 리더는 자기 말에 책임을 진다. 보스의 발은 늘 책상 앞에 있지만 리더의 발은 현장을 누비느라 늘 분주하다.

 

이 대화의 시점은 아이젠하워가 현직 대통령으로 재직할 때라고 한다. 즉 관념적으로 지어낸 말이 아니라 숱한 전쟁터를 누비면서, 위기에 처한 조국을 건지기 위해 몸소 실천을 통해 터득한 지혜의 리더십인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국방 전반에 걸쳐 탁월한 리더십으로 국가가 처한 총체적 난국을 헤쳐나가야 할 우리 대통령은 과연 진정한 리더인가. 아니면 보스인가?

 

세월호 사건 발생 후 7시간 만에 나타나 스스로 미스터리를 자초한 우리 대통령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이며 누구인가?

최순실과의 질긴 악연을 끊지 못하고 국정을 농락 당한 대통령을 우리는 지금 끝까지 믿고 따라야 할 것인가?

 

인간은 누구나 부족한 존재이다. 인간이 저지르는 잘못 중에 대부분은 탐욕과 오만함에서 비롯된다. 특히 작든 크든 집단을 이끄는 지도자는 교만의 덫에 걸리지 않도록 항상 겸손하게 스스로를 성찰하는 데 힘 써야 한다.

 

리더는 다변가가 아니라 Questioning Skiller, 즉 질문 기술자가 돼야 한다. 항상 예리하고 호기심 어린 질문(Why?)을 통하여 내적성찰을 이루고 창조적인 이슈를 선점해야 한다.

 

말 잘하는 지도자보다는 잘 보고 열심히 듣고 세심히 묻는 지도자가 훨씬 현명하고 실패할 위험이 적다. 또한 리더는 집단을 이끄는 책임감보다 부여받은 과업에 대한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 비전을 담은 사명서나 기도문을 옆에 두고 수시로 읽고 외워 마음판에 새기는 것도 자신의 신념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충신들의 쓴소리에 귀를 막아버리고, 간신들이 뱉어내는 달콤한 아첨에 이성을 잃고 혼을 빼앗겨 결국은 자신과 집단을 망치게 된다.

 

날마다 타오르는 촛불정국으로 인해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상황을 맞았지만 대통령은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을 피력하기에 앞서 국가경영의 책임자로서 공권력에서 맞서는 언행을 삼가하고 명명백백(明明白白)하게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릴 것은 가리고 해명할 것은 해명하여 스스로 헌법이 보장한 권한과 책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게 국정공백을 최소화 해야 하며 겸허한 마음으로 탄핵정국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충정을 발휘해 줄 것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2016년 11월 24일

김경중(문화평론가, 국가혁신포럼 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