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虛像)의 바벨탑
나라가 위험하다. 경제는 엉망이고 정치는 돌이킬 수 없는 수렁에 빠진 듯하다. 임기를 겨우 1년 4개월 남겨둔 대통령이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운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러나 이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 수 있는 묘책을 쉽게 찾을 수 없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최근 불거진 최순실 사건에 대한 의혹은 점점 구체적인 정황과 증거가 드러나면서 국민과 정치권을 패닉상태로 몰고 있다. 그 동안 역대 정권마다 어김없이 게이트가 터져 나왔지만 이번 사건은 국민들에게 참을 수 없는 자괴감과 모욕을 안겨주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참으로 괴이한 사건이다.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권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국민 앞에 더 낯을 들기 어렵게 됐다.
그 동안 숱한 의혹이 제기돼 왔음에도 누구하나 나서서 속 시원히 진실을 밝히는데 앞장서지 못하고 침묵과 방관으로 일관해 왔다.
최순실에 대한 의혹을 제일 먼저 구체적으로 제기한 모 보수 일간지와 청와대의 싸움으로 번지고 나서야 국민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고 급기야 진보언론까지 가세함으로 사건의 전말들이 마치 양파껍질 벗겨지듯 하나 둘 씩 까발려지고 있다.
이번 게이트는 구체적 증거가 드러나고 대통령이 사과까지 한 마당에 더 이상 감출래야 감출 것이 없을 정도로 의혹이 사실로 밝혀졌으므로 남은 과제는 역사와 국민 앞에 철저히 진실을 규명하고 한 점 의혹 없이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 됐는지
밝히는 것뿐이다.
단순히 홍보나 연설문 수정에 개인적인 친분으로 관여하게 됐다던 대통령의 사과문은 채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청와대 인사나 국가기밀에 해당하는 문서까지 보고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져 국기문란 사건으로까지 증폭됐을 뿐 아니라 대통령 사과의 진정성마저 의심받는 입장이 돼 버렸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동안 박근혜 대통령의 독선과 불통의 정치스타일에 이골이 나있던 바닥민심은 각종 SNS를 통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들끓기 시작했고, 만약 이러한 분노의 둑이 터진다면 누구도 손을 대기 어려울 정도로 나라가 혼란에 빠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대통령은 사건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한 것인지 아니면 평소의 스타일대로 뚝심 하나로 정면돌파하려고 했는지 몰라도 문제해결의 첫단추를 꿰는데 실패했다.
이제 그 누구도 대통령의 변명과 사과 따위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않을 것이고 국정운영의 권위와 동력을 상실한 청와대와 여당 지도부, 그리고 내각과 대통령 비서진은 곧 전원사퇴라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고 민심수습에 나서려 할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대통령의 하야나 국무위원들의 총 사퇴를 거론하기 이전에 최순실을 독일에서 강제소환하여 무소불위의 권력행사에 대한 진실을 밝힘으로써 답답한 국민의 마음을 속 시원히 풀어주고 엄중히 국정농단의 죄를 엄중히 묻는 데 있다.
최순실의 귀국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갈 것이고 숱한 난제들을 해결해야 할 국정운영은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는 난파선처럼 좌초 위기를 맞을 것이 분명하다.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일거에 정리하는 방법은 그곳을 칼로 싹뚝 잘라버리는 쾌도난마식의 방법뿐이다. 곪고 썩어들어가는 상처부위를 근본적으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메스를 대어 종양의 뿌리를 뽑아내는 길밖에 없다.
40년 전 최태민과의 악연에서 시작된 이번 사건은 위정자의 공과 사를 구별하는 판단력과 현실인식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직접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어머니를 비명에 잃고 정서적으로 힘겨웠던 나이에 사이비 교주의 간교한 사술에 걸려 마음을 빼앗기고 올무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한 개인의 불행한 가정사가 나라마저 뒤흔들어 놓는 질긴 악연의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으니 이제 와서 죽은 최태민이를 손가락질하고 하늘을 원망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알려진 바로는 가짜 목사 최태민이 세 차례에 걸친 간곡한 위로의 편지로 20대 초반인 박근혜의 마음을 움직이고 술수를 부려 자기 마음대로 조종했다는 것이다.
이미 보도된 자료에 의하면 그의 간교한 수법과 집요한 설득에 20대 초반의 대통령 영애를 새마음봉사단 총재로 앉혀놓고 그 뒷전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를 하며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권력형 비리를 저지르며 사기횡령 등 범죄행위에 연루된 것이 무려 44건이나 된다는 사실이 정보당국에 의해 청와대에 까지 보고됐다고 한다.
그 일로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격노해 관계를 끊도록 지시했으나 이미 최태민의 사술(邪術)에 넘어간 대통령의 장녀는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했고 그 때 최태민의 딸 최순실도 알게 됐다고 전해진다.
오죽했으면 동생인 근영과 지만이 1990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진정코 저희 언니(박근혜)는 최태민 씨에게 철저히 속은 죄 밖에 없다며 최 씨는 자신의 축재행위가 탄로 날까봐 계속 언니를 방패막이로 삼아왔다“고 호소했겠는가?
일부 언론에서는 최순실이 지금 하는 짓이 과거 최태민의 행각과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이들 부녀가 대를 이어가며 박 대통령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최태민과 최순실을 고려 공민왕 때의 요승 신돈에 비유하며 이번 사건을 종교드라마라고 희화하고 있다. 대통령의 가슴 아픈 가정사를 이용해 교묘하게 마음을 사로잡고 국정을 농단해온 최순실 역시 비정상적인 가정에서 태어나 일반적인 상식과는 거리가 먼 정서적 환경 속에서 성장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전직 스님이자 가짜 목사로 행세하던 아버지한테 배운 수법을 이어받아 사업가로서 가짜종교인으로 모사꾼으로 처신하며 난세를 헤쳐나가는 간교한 지략을 터득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맹목적으로 숭배함으로써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려는 심리를 갖고 있다. 많은 부를 축적한 사람이나 권좌에 올라 천하를 호령하던 사람일수록 그러한 우상에 기대는 심리가 더 강하다. 그럴수록 명석한 사고는 혼미해지고 마치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한시라도 우상을 붙들고 있지 않으면 도무지 불안해서 살 수 없을 정도로 영혼이 피폐해진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 붙들고 있는 우상은 역사가 가르쳐 주고 올바른 종교가 지적해 주듯이 모두 허상이다. 실체도 없고 효험도 없으면서도 강박관념과 그릇된 믿음에 의해 우상은 점점 사악한 생명력을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그 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알게 모르게 허상의 바벨탑을 쌓아왔다. 부디 이번 사건을 성찰과 반성의 계기로 삼아 최태민과 최순실이라는 미몽에서 깨어나 우상을 불살라버리고 허상을 영혼속에서 몰아냄으로써 본연의 지혜와 명철을 되찾길 진심으로 바란다.
남은 임기 동안 나라의 명운이 달린 국방과 안보, 경제와 민생문제 해결에 총력을 기울여 자신의 국정운영 방침인 비정상의 정상화를 뼈를 깎는 각오로 몸소 실천하여 실추된 이미지와 추락된 국격을 되찾는데 매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두 번 다시 국가의 안위와 위상을 갉아먹는 허상의 바벨탑이 이 나라 이 땅에서, 그리고 국정을 운용하는 지도자들의 마음속에서 세워지지 않도록 늘 깨어 기도하고 파수꾼의 역할을 철저히 이행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
국정 전반에 걸쳐 예측이 가능하고 논리와 합리가 앞서는 신 사고, 신 개념, 신 지식을 바탕으로 보다 전략적인 국가경영이 될 수 있도록 위정자들은 냉철한 판단력과 절제의 미덕을 발휘해 나가길 간곡히 당부하는 바이다.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는 훌륭한 차기 대통령을 탄생시키기 위해 투명하고 공명정대한 정치구조 개선을 위해 다 같이 힘을 모으자. 쥐 한 마리 잡기 위해 백년 묵은 장독을 깨뜨리는 우를 범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명심하자.
김경중(문화평론가, 국가혁신포럼 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