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항리에서
늦여름 소나기가 무진장 내리던 날,
춘천 땅끝마을 오항리에서
새들은 더 이상 날지 않았다
예배당의 녹슨 종탑 위로
낡은 슬레이트 지붕을 때리던 바람이
삐걱거리며 울고 있었고,
멀리 소양댐이 내려다 보이는
경수네집 늙은 굴참나무는
세상살이를 걱정하는 할아범의 얼굴로
우두커니 비를 맞고 서있었다
솔바람 카페의 고장난 벽시계는
여전히 오후 3시에 멈춰 있었고,
실내에는 마르지 않은 푸른 잉크 색깔로
빠뜨리시아 까스의 젖은 목소리가
길게 머리를 풀고 있었다
밤꽃 비린내가 흥건히 풍기는 날,
입버릇처럼 오항리를 떠나고 싶다던
통나무집 아낙의 마른 가슴에도
이따금씩,
겨울 벽난로의 불씨들이
환하게 살아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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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드리시아 까스: 프랑스의 저명한 여류 샹송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