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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욕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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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방학기간인데도 불구하고 때 아니게 새벽과의 전쟁을 힘겹게 치르고 있습니다. 성경에도 '새벽을 깨우는 자가 돼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기록돼 있는데 나의 새벽은 예수님께 조용히 무릎 꿇고 기도를 드리는 경건의 시간이 아니라 조찬 모임에 참석하느라 부산을 떨어야 하는 분주한 시간입니다.

 

저의 조찬 모임은 대략 일 주일에 세 번 정도 잡혀 있습니다.
주로 기독교인들과 관계된 모임인데 함께 예배를 드리고 교제를 나누거나 말씀을 듣는 경우가 아니면 저와 관련된 기업체의 직원들에게 특강을 해주는 자리입니다.

평소 학교 강의에 많이 지쳐 있는 저로서는 이른 아침의 조찬 모임이 많은 부담이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힘과 경험이 공급되는 가치있는 시간으로서 유용하게 쓰여지고 있습니다.

저는 내일의 조찬 모임을 앞두고 지금 그 모임의 성격과 의미보다는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동기와 욕구에 대해 잠시 생각을 해봅니다.

욕구란 사전적으로 '무엇을 얻거나 무슨 일을 하고자 바라는일'이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쁜 와중에도 이른 아침부터 모임을 갖는 사람들의 욕구는 대체 어떤 것일까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 욕구에 관련된 많은 학설 중 대표적인 것으로 꼽히는 '아브라함 마슬로우'의 욕구5단계설을 간단히 요약해서 소개해 봅니다

첫 번째는 생리적(본능적)욕구입니다. 욕구 중에 가장 낮은 단계이면서 가장 강렬한 욕구인데 대표적으로 식욕 과 성욕이 있습니다. 만일 이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면 인간은 좀처럼 다음 단계의 욕구로 나갈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안전의 욕구입니다.

그것은 편안함, 보호, 질서, 안전, 불안과 공포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하는 심리적 욕구입니다. 은행저축이나 보험, 그리고 세콤과 같은 경비시스템은 바로 소비자의 이러한 불안심리를 이용한 마케팅 상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세 번째는 귀속과 사랑의 욕구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남과 어울리고 사랑 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이 욕구는 인간이 외로움과 소외감에서 벗어나려는 동기에서 생겨납니다. 어떤 단체에 가입하고, 그 단체의 이념과 가치에 동조하며, 특정사람과 가까이 지내거나 아껴주는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자존의 욕구입니다.

이욕구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생각이나 행위에 대한 가치를 평가해 주는 데서 생기는 자존감의 획득인 동시에 자기 스스로 자기를 높게 생각하는 자아 존중감(Self-esteem)을 말합니다. 이 욕구 때문에 우리는 남에게 여러모로 신경을 쓰게 됩니다.

다섯 번째 욕구는 자아실현의 욕구입니다.

이전의 욕구가 어떤 목적에 종속된 수단으로서의 욕구였다면 그에 반해 자아실현자는 자신의 자족적인 만족으로부터 가치와 행복을 누립니다. 즉 내면으로부터 얻어지는 자신만의 행복감이겠죠. 그렇게 자아실현을 성취함으로써 자기의 자족적인 만족과 기쁨을 누리는 사람은 그 만족과 기쁨에 의해 너그러워진 품성으로 인간과 사물을 더 깊게 이해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또한 사람과 사물을 본질까지 꿰뚫는 지혜를 가졌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의연함과 도덕적인 규범을 유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아실현자의 여러 가지 특성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같은 경험을 반복하는 데도 지속적으로 즐거움과 경이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늘 보던 나무와 꽃에서도 새로운 즐거움과 경이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따라서 삶의 경험에 싫증을 내거나 지루해하지 않습니다. 그는 보통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사소한 것에서조차 희열을 맛 봅니다.

자아실현자는 가식이 없고, 솔직하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행동합니다. 정서를 숨기지 않고 정직하게 나타내며, 자연스럽게 행동함으로써 자기의 본성에 따릅니다.

자아실현자는 책임감이 강합니다. 일에 열중하며 소명의식이 높습니다. 또한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며, 마치 연애하듯이 일을 하고, 일을 단순히 생계의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의미 있는 어떤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남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은 결핍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존재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보통사람들은 세 번째 욕구, 즉 귀속과 사랑의 욕구가 충족되지 못했을 때 의도적으로 사랑을 하고, 또한 사랑을 잃을까 매우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사랑을 잃으면 굶주린 사람처럼 사랑을 구걸하게 됩니다. 심지어는 상실감으로 목숨을 버리는 일까지 있습니다.

그러나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욕구의 결핍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고 사랑을 구걸하지도 않으며 질투심을 오랫동안 갖지도 않습니다. 또한 그의 사랑에는 보통사람들의 사랑에서 부족하기 쉬운 재미, 기쁨, 웃음 등이 충만합니다.

자아실현자는 신분, 교육수준, 정치적 파벌, 종파, 인종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에게 관대하고 포용력이 강합니다. 그는 이런 문제들을 거의 의식조차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보다 교육을 못 받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우월한 태도를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가 갖지 못한 지식과 기술을 가진, 예컨대 목수나 농부, 아이들까지도 존경합니다.

이 외에도 선악을 구별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든지, 유머감각이 풍부하다든지, 창의력이 돋보인다든지 하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만일 이러한 자아실현자들이 국가와 사회의 지도자가 된다면 그곳은 이상적인 유토피아가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실로 얼마나 많은 지도자들이 자신의 하위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국민들에게 희생을 강요했습니까? 그리하여 얼마나 많은 무고한 백성들이 그들의 하위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제물로 바쳐지고 고통당하였습니까?

현대의 물질문명은 모든 면에서 인간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는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서는 예전에 비해 훨씬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인간의 정신세계는 날이 갈수록 황폐해지기만 합니다. 따라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불안과 불행의 늪 속에 빠져나올 생각을 못하고 늘상 허우적거리며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어른들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하위적 욕구에 지나치게 시달리지 않도록 해주어야하고 보다 차원 높은 정신세계, 즉 상위적 욕구 쪽으로 향상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세상은 어느 날 갑자기 한꺼번에 대낮처럼 밝아질 수 없습니다. 구성원 하나하나가 자신의 의식과 행동에 빛을 발함으로써 사회 전체를 환하게 밝힐 수 있는 것이며, 보다 높고 숭고한 곳으로 한 단계 씩 욕구가 향상됨으로써 우리 사회 전체가 맑아질 수 있음을 깨달아 개인이나 국가적으로도 상위적 욕구의 향상을 위한 노력과 투자에 많은 관심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은 이보다 더 상위적인 욕구, 즉 영적인 욕구에 늘 젖어 살아야 합니다. 우리들의 만남도 주님의 임재를 함께 느끼고 주님의 사랑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기쁨과 행복을 나누는 그런 복된 모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하는 그런 차원 높은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이른 새벽부터 미명을 깨우며 기도드리는 많은 중보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는 조찬모임 뿐만 아니라 새벽기도회에도 열심을 내어 참석하겠다는 다짐을 굳게 해봅니다. 무더위에 모두들 건강하세요.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