燈
퇴근 무렵 안과에 갔다
의사가 어디가 불편하냐고 물었다
나는 눈 앞이 흐리다고 말했다
의사도 흐릿한 눈으로 웃으며
오늘 저녁 춘천에
안개주의보가 내렸다고 했다
그리고 몇 분 동안 빛을 쏘아
내 눈 속에 묻어 있는
축축한 습기들을 말려주었다
안대를 하고 밖으로 나오니
가을바람이 스산히 불고 있었다
낡은 바바리코트 깃을 여미고
저녁미사를 알리는 종소리가
차갑게 울려퍼지는
스무숲 성당길을
터벅터벅 걸어 올라갔다
길가에 서 있던 가로등 하나,
레이저 같은 빛줄기를 쏴 대며
낙엽의 젖은 몸을
따뜻하게 말려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