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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가을모기, 그 이유있는 반란

 

 

가을모기, 그 이유있는 반란

 

지난 여름 자취를 감췄던 모기들이 모기입이 삐뚫어진다는 처서도 지나고 입추와 백로도 지나 어느덧 완연한 가을이건만 뾰족한 주둥이를 내밀며 허공을 떼 지어 날아다닌다.

강원도 홍천 공작산 기슭에서 들상추를 뽑던 아내는 연신 모기에게 피를 빨려 가녀린 팔뚝을 벅벅 긁고 있다. 요놈의 모기들이 귀신 같이 피 냄새를 구별해 온갖 마이신과 부신피질호르몬제와 젊은 시절 마셨던 소주로 혼탁하고 반쯤 방부처리된 내 몸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는다.

어느 날 혈액 속의 적혈구 수치가 높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신촌 로타리 부근 허름한 헌혈의 집에 제발로 찾아갔던 나는 채혈부적격 판정을 받고 한 방울의 피도 뽑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렸던 아픔이 남아서인지 내 피를 거부하는 모기들이 몹시 미워져 웽웽거리며 날아다니는 그놈들을 힘껏 손아귀로 낚아채 비명횡사시켜버렸다.

뉴욕 메트로리탄 박물관에서 이집트 미이라들의 볼썽사나운 모습을 목격하며 신의 뜻에 반하는 그들을 측은히 여긴 적이 있었는데 서서히 약물중독과 아직도 완전히 분해되지 않은 알코올의 화학작용으로 점점 미이라처럼 변해가는 내 노년의 일상이 마른 뼈처럼 아프게 마음을 찔러온다.

육신은 흙과 먼지로 돌아가지 못하고 영혼은 귀천하지 못해 구천을 맴돈다면 이 얼마나 가련한 일인가?

폭우가 내려 발목까지 자라오른 마당의 잡풀들 틈에서 가을모기는 왕성히 서식한다. 연신 모기에게 물려 짜증내는 아내와 전혀 모기가 범접하지 못하는 나 사이에서 바람은 맥없이 불어오고 소싯적 그토록 싫어했던 어느 여자가 내게 던졌던 그 말 한 마디가 불쑥 뇌리를 스쳐간다. 

나는 지금 가슴 한구석에서 먼지처럼 켜켜이 쌓여 있는 그 말을 내 혈관을 대차게 공격하지 못하고 그저 귓전에서만 맴도는 모기들에게 하고 싶다.  "너희는 왜 나를 그토록 싫어하느냐?"고

황혼이 깃들기 시작하는 공작산 기슭에서 아내는 흐르는 개울믈에 흙 묻은 들상추를 정성껏 씻으며 내 말을 엿들었는지 허허로이 지나가는 바람결에 빙그레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