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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시100선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73) - 봄이 오는 길목에서

 

 

봄이 오는 길목에서

 

사랑이 짧게 스쳐가는 것도

꽃이 땅에 오래 머물지 않는 것도

어느 생에서 향기로 다시 피기 때문이리

 

우리는 짧은 만남을 아쉬워 하고

이별의 순간을 안타까워 하지만

창틈으로 잠깐 스며드는 햇살이

때론 태양보다 더 눈부시지 않은가 

 

영혼은 은빛날개로 하늘을 날고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 먼지로 흩날리는

마른 뼈들만 가득한 빈 무덤가

 

푸르던 꿈들은 풀잎이슬로 맺히고

못다한 사랑은 들꽃 한 송이로 피나니

이승과 저승 사이엔 빈손을 흔드는 바람뿐

 

지금도 눈에 밟히는 이 어여쁨은

가슴 깊이 저며오는 이 보고픔은

내 생의 어느 길목에서 놓쳐버린

형체 없는 몇 줄의 바람 때문이리

 

아직 반생의 순례길이 내 앞에 놓여 있듯이

아직 흘려야 할 눈물이 반쯤은 남아 있듯이

 

꽃들도 반쯤만 개화하고

새들도 반쯤만 입을 벌려 노래하는

아직 이른 봄날에

 

굳은 흙더미를 밀어내고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는 저 연록의 잎새들...

 

꽃들은 모진 광풍에 흔들리며 핀다는 것을

사랑은 시린 못자국 몇 개의 아픔으로

단단히 여물어 간다는 것을

 

나는 잔설이 분분한

봄이 오는 길목에서

때 늦은 희망을 가슴에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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