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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답게

 

 

 

고등학교 시절 교장선생님 호가 '답게'였다. 호하면 '목월'이니 '미당'이니 ‘만해’니 '추사'니 하며 그럴듯한 어감과 의미가 담겨야 되는 줄 알았는데 '답게'라는 호는 무척 생소하고 어설프게 느껴졌다. 하지만 곰씹어 보면 그 안에 담겨 있는 의미만큼은 한창 삶의 본질과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던 까까머리 고등학생들에겐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진솔하게 다가왔다.

교육자는 교육자답게, 학생은 학생답게, 대통령은 대통령답게, 국민은 국민답게, 부모는 부모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살면 모든 것이 올바로 설 수 있다는 심오한 철학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교장선생님은 그야말로 교장답게 인품이 출중하셨고 능력이 탁월하셨으며 매사에 위풍당당한 개척자의 모습으로 교사나 학생 모두에게 귀감이 되셨다. 하지만 우리학교를 끝으로 선생님은 고등학교 교장 직을 마감하시고, 모 대학 학장으로 영전함으로써 '답게' 학장으로서 새로운 도약기를 맞게 되셨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힘겹게 환경에 적응하기 바빴던 터라 선생님을 만나 뵙거나 소식을 들을 기회는 많지 않았지만 간간히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워낙 교육계에 끼친 공로가 지대하고 학문적 소양이 뛰어나신 분이라 그런지 오랫동안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시다가 서울소재 종합대학교 총장까지 지내셨다고 한다.

지금은 타계하시어 이 땅에선 영원히 뵐 수는 없지만 그 때 그 시절의 추억들이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가슴 한 켠에 아련히 남아있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분에 넘치는 욕망과 공명심에 사로잡힐 때마다 '답게'가 주는 참의미를 되새기며 욕심을 내려놓고 바른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자성의 의지를 다져 보곤 한다.

'무엇이 되는가 보다 어떻게 사는가'가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삶의 명제가 될진대 세상의 어느 가르침보다 '답게' 살라는 교장선생님의 소박한 가르침을 마음 판에 새기고 죽을 때까지 잊지 않고 실천해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