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이 땅의 모든 길에는
핏방울이 뿌려져 있다
막힌 산허리를 뚫고
묶인 쇠사슬을 끊고
절망의 담벽을 부숴 길을 낸 사람들
순교자의
노동자의
혁명가의
어린 양의 핏값이 아니었다면
아직도 길은 거기에 없었으리라
이제 돌아가기엔 너무 먼
해 저문 인생길에서
다시 길을 묻는다
나의 마음에서
너의 마음으로 내려가는
누르고 검은 황톳길
빈 들의 단풍나무처럼
스스로를 버려 붉은 융단이 되는
꽃보다 아름다운 황혼길
길 위에서
또 하나의 길을 찾는
속절없는 가을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