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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시100선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14) - 꿈꾸는 세상


 

꾸는 세상

 

가을햇살이 테라스의 유리창

너머로 고요히 스며드는 오후

 

잘 익은 사과 몇 알의

향기로움처럼
아내의 화실엔 브람스의

실내악이 흐르고 있었다

늘 완벽한 평화를 꿈꾸던

한 청년이

십자가에 매달린 채

고개를 떨구고 있었고

 

아내가 그린 20호짜리

해바라기 그림은
푸른 대못 위에

낮게 걸려 있었다

 

님만 바라보다 새까맣게

타버린 가슴속

가을호수보다 깊은 은총

가을하늘보다 높은 사랑

씨앗으로 단단히 여물어 가는데

 

한 줌 마른 꽃잎으로 스러져 가는

황혼의 언저리에서 

나는 누구를 그리워하며

사과 한 입의 쓸쓸함을

베어물고 있는가

 

우리는 때때로

하늘과 땅 사이

그 아득한 절망 때문에
꿈꾸는지 모른다

십자가의 청년처럼
모가지가 부러진

해바라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