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삶-봉화 성암재 고택체험
사람들은 여행을 좋아한다. 그러나 막상 행선지를 정하려고 하면 막막할 때가 많다. 그럴 때 퍼뜩 떠오르는 곳은 대체로 어떤 이야기가 전해 오는 고장이나, 특정 장소가 될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그곳의 풍경보다는 이야기에 끌려 머나먼 곳까지 찾아간다. 덴마크의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동화 속 이야기가 그렇고 영화나 드라마 속의 이야기가 또한 그렇다. 동해안의 작은 바닷가였던 정동진이 모래시계라는 드라마 속의 배경이 되면서 하루아침에 유명한 관광명소가 되었다. 겨울연가의 촬영지인 춘천의 남이섬도 그렇고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시인 하이네의 시에 곡을 붙여 널리 불리고 있는 ‘로렐라이 언덕’의 전설 또한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그곳으로 몰려오게 하였다.
이처럼 우리들의 삶 속에서 사건과 사물은 사실 그 자체가 아닌 주관적인 의미로서 받아들여지며 이야기(story)로 자리 잡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은 단순히 사건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나누며(telling) 새로이 각색되어 의미를 더해가는 것이다.
지난 7월 16일부터 2박 3일 동안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한 경북 봉화군 춘양면에 있는 성암재에서의 고택체험도 친구가 전해준 이야기에 끌려 찾아
간 곳이다. 우기였지만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 틈을 타서 평소 마음에 두었던 여러 곳을 뒤로하고 찾아간 성암제는 단순한 고택체험을 넘어 내 생애 잊지 못할 아주 특별한 인생 체험을 한 곳으로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이다.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교통편을 시외버스로 잡고, 아침 일찍이 춘천 시외버스 터미널로 나가 영주 가는 버스를 탔다. 비교적 한산한 차내에 차가운 에어컨 바람을 쐬며 약 두 시간 쯤 걸려 영주 터미널에 도착했다. 다시 영주에서 40분가량 버스를 갈아타고, 억지 춘양으로 유명한 춘양 터미널에 도착. 거기서 우리를 마중 나온 분이 바로 100년 고택 성암재의 주인장 강춘기 선생이었다. 예약을 할 때 문자로 여러 번 얘기들을 주고받아서 그런지 별로 어색함을 느끼지 못하고, 들 뜬 마음으로 미리 예정된 코스인 청량산 금강송 군락지로 차를 달렸다. 수 십 년에서 수 백 년 묵은 소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쭉쭉 뻗어 있는 모습이 장관이었으며, 우리 일행은 잠시 차에서 내려 숲길을 걸으며 맑고 깨끗한 천연산소도 마시며, 작
은 들꽃 사진도 찍고, 솔바람, 솔향기 속에서 상쾌한 힐링의 시간을 가진 후, 다시 승용차로 20분 쯤 걸려 목적지 성암재에 도착했다.
아직도 저녁햇살이 따가운 성암재 뜨락에서 안주인인 사모님이 손님 몇 분과 함께 꽃들이 만발한 뜨락에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리고 주인장의 안내로 우리는 성암재의 이곳저곳을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둘러보았고, 꽃에 관심이 많은 나와 아내는 예쁘고 옹종맞게 피어있는 갖가지 여름 꽃들을 감상하며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또한 바로 옆에 담장을 나란히 하고 있는 만산고택의 우아함과 옛 정취를 함께 느끼며, 어느덧 복잡다단한 세상사들과 작별을 하고 있었다.
주인장인 강선생의 고택에 얽힌 내력과 자신이 일 년 반 전에 대기업에 다니다 그만두고 할아버지가 지으신 성암재에 와서 살게 된 이유, 그리고 경주 양동마을이 고향이신 안주인의 소탈하고, 아기자기한 이야기에 마음을 뺐기고 있다가 해 저문 성암재의 뜨락에서 한여름 밤의 꿈에 젖어 충만한 행복을 누리고 있었다.
밖에 나가(성암재에선 저녁 식사가 안 됨) 입안에서 살살녹는 한우등심으로 저녁식사를 마친 우리 부부는 다도 전문가이신 안주인의 특별한 배려로 때마침 함께 숙박하게 된 SBS 카메라 감독 가족과 함께 몸과 마음이 맑아진다는 연꽃차로 잠시 다도 체험을 하며 100년을 거슬러 조선 말기 이곳으로 낙향하신 조부 성암 공과 또그 분의 조부 되시는 만산 공에 대한 전설 같은 얘기를 들으며 고택의 깊어가는 여름밤을 늦게까지 만끽할 수 있었다.
60이 훌쩍 넘은 나이에 세속의 근심과 욕심을 비우고 자연과 벗삼아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 주인장 내외가 부럽기도 하고, 인간미 넘치는 따스한 정성이 고맙기도 하여 달려드는 모기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우리는 고단한 몸과 맘을 누이고, 고택에서의 첫날밤을 편히 쉴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가정과 출신의 안주인이 정성껏 차려주신 연잎 밥 성찬을 오감으로 음미하고, 곁들여 바리스타 자격증을 딴 주인장이 손수 끓인 향기로운 핸드드립 모닝커피를 마시며 멋진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백두대간 협곡열차 탑승과 트레킹에 나섰다. 주인장이 미리 예약해 놓은 티켓을 손에 쥐고, 우리 부부는 춘양역에서 강릉행 무궁화 열차를 타고, 20여 분 후에 협곡열차의 출발지인 분천역에 도착, V-Train으로 갈아 탔다.
구비구비 흐르는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옆이 창으로 탁 트인 협곡열차는 한 시간 가량의 운행을 마무리하고 철암역에 하차하였다. 창밖에 펼쳐지는 협곡의 풍경도 아름다웠지만, 어린아이들처럼 들뜬 승객들의 얼굴표정에서 이 여행의 참 의미를 맛 볼 수 있었고, 잠시 정차하는 간이역에 차창으로 비춰진 아내의 얼굴은 처녀시절의 순수함과 해맑은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묻어나와 분홍색 협곡열차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져 여행 내내 카메라에 담은 사진을 훔쳐 보며 즐거운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우리는 약 한 시간 반 동안 철암역에 머물다가 다시 협곡열차를 타고 분천역까지 트레킹 코스기 이어지는 양원역으로 출발했다. 양원역 간이식당에 차려진 간단한 먹을거리로 요기를 하고, 다리 밑에서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물줄기를 바라보며, 약 한 시간 반 코스의 트레킹을 때마침 시원하게 불어오는 강바람을 맞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다.
약 30분 코스의 평탄한 아스팔트 길이 끝나자 눈앞에 산등성이의 오르막 길이 보였다. 이미 가슴팍에는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고, 한 손엔 양복 윗도리를 들고, 랜드로바 스타일의 신발을 신고 있었던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협소한 산 둘레길을 걷다가 그만 미끄러져 계곡 밑으로 몇 번 굴러 떨어졌.
다. 트레킹 코스의 옷차림으론 전혀 어울리지 않았던 준비 없는 행차(?)가 큰 불찰이었다. 걸음이 빠른 아내가 앞서가다가 내가 굴러떨어지는 소리에 뒤돌아보며 비명을 질렀다. 다행히 계곡 밑으로 깊이 굴러 떨어지지 않고, 작은 나뭇가지와 풀뿌리를 움켜쥐고 버틴 덕에 약간의 찰과상만 입었고, 가까스로 구조된 나의 체르마트길 트레킹은 아쉽게도 그것으로 막을 내리고 나와 아내는 차에 실려 춘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모든 것이 잠깐의 실수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그 위기 속에서도 침착하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이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었다. 모든 게 꿈이었고, 하나님의 은혜였다. 무엇보다 그곳에서 만난 착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분들의 노고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감사함이었다. 운 좋게 팔 다리에 약간의 찰과 상만 입은 나는 성암재의 마지막 밤을 여유롭게 마무리 할 수 있었다.(아내는 뒷치닥거리 때문에 밤 늦게 까지 고생했지만...이 자리를 빌어 비로소 고맙다는 얘기를 전함. ㅋㅋㅋ)
어두운 밤하늘에는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 너머 삼층천에 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영안으로 보는 것 같았다.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 날 밤 단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몸이 욱신욱신 쑤셨지만 오래 가지 않아 나는 단잠에 푹 빠져들었다. 그리고 아침, 두 번 째 아침 식사를 한결 같은 정성으로 차려주신 안주인 덕분에 한국의 전통밥상으로 포식한 후, 나와 아내는 춘천 집으로 향했다. 주인장이 손수 자가용 승용차로 태워다준 영주 부석사를 빗속에서 얼추 감상하고, 시내버스를 타고 소수서원, 풍기 읍내를 거쳐 다시 영주 시외버스 터미널로 돌아왔다.
거기서 다시 원주, 춘천을 거쳐 집으로 돌아온 우리 부부는 2박 3일의 짧은 여행이 마치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곳에서 귀환한 것처럼 아득함을 느꼈다. 그리고 체험 현장, 현장마다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넣어 아이들에게 카톡으로 보냈던 것들을 다시 열어보면서 인생이란 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에 있는 선택(choice)이란 ‘폴 사르트르’의 명언이 떠올랐다. 만일 내가 이번 휴가 때 성암재를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여행의 즐거움과 함께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은혜에 대한 귀한 깨달음은 얻지 못했으리라 생각하며 남은 방학 기간 동안 기도와 말씀으로 충만한 은혜의 삼매경 속에 빠져 들어 가리라 다짐해 본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