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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시100선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24) -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가을이면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래된 편지처럼

나만이 아는 은밀한 곳에

가만히 숨어있다가

 

켜켜이 묵은 먼지를 털고

뾰족이 얼굴을 내미는

그리운 사람이 있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 듯

오색 단풍잎도 가을이면

한목숨 버리고 떠나지만

 

층층히 쌓여있는 추억의 편린들은

내 가슴속에서 다시

찬연히 피어납니다

 

가을에 문득 생각나는 사람은

꽃같은 얼굴의 사람이 아니라

꽃다운 마음의 사람입니다

 

가을이면 살포시 보고픈 사람은

함께 꽃길을 걷던 사람이 아니라

 

낙엽이 지는 가을숲에서

하염없이 나를 기다려주던

빈 의자 같은 사람입니다

 

이 가을,

나도 누군가의

빛바랜 편지이고 싶습니다

 

이 가을,

나도 누군가의

묵묵한 기다림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