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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시100선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11) - 허수아비

 

허수아비

허허로운 들판에
두 팔 벌리고 외로이

있는 허수아비
새들이 무서워 가만히 날고 있다

광야 같은 이 세상,

빈 바람만 가득한 가슴에도

얼마나 많은 허수아비들이

바람에 갈기갈기 찢긴

옷자락을 펄럭이며

 

반쯤 남은 외다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우리를 두려워 떨게 하는가

 

가을의 들녘에서

벼들은 농부가 흘린 땀방울의

무게만큼 알곡을 매달고

겸허히 고개 숙이는데

 

거둘 것 없는 텅 빈 영혼은

죄의 무게만큼

부끄러움의 멍에를 메

슬피 울며 잠못 이루네

 

믿음 없는 뜻뜨미지근한 심장은

진실 같은 거짓에

늘 콩닥콩닥
숨 가쁘게 뛰고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아

이 가을엔 더 이상
분칠한 외로움에 속지 말자

이 가을엔 절대로

저 어릿광대의 몸짓에
영혼의 빗장을 풀지 말자

삶이 비록,

열매 없는 무화과 같을지라도

죽은 허수아비 앞에
두려워 벌벌 떠는
굶주린 참새 한 마리 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