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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길을 묻다

 

 

어딜 가나 도로표지판이 잘 돼 있고 네비게이션이 척척 길을 가르쳐 주는 요즘에도 이따금씩 길을 물을 때가 있다. 때론 표지판이 못 미더워서이기도 하지만 순간적으로 길을 잃거나 막다른 골목길을 만났을 때의 절박한 심정으로 길을 묻곤 한다.

길을 묻는다는 것은 자신을 부인하고 낮춘다는 뜻이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신분이 출중해도 길을 물을 때만큼은 잠시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공손한 자세와 부드러운 말씨를 취해야 한다.

때론 모른다는 답을 들어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 주는 사람을 만나면 진심어린 감사의 인사를 건네게 된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종종 길을 물었다. 젊은 시절엔 존경하는 분들이나 책에게 길을 묻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고속주행 페달을 밟으면서 누구에게도 길을 묻지 않게 되었다. 아니 경험과 지식을 앞세워 습관처럼 달렸 갔기에 길을 물을 필요가 없었을런지도 모른다.그러나 탄탄대로라고 생각했던 그 길에 브레이크가 걸리고, 끝이 없을 거라고 믿았던 그 길에서 끝을 만난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순례의 여정 속에서 다시 길을 묻는다. 알파와 오메가되신 그분에게 공손히 길을 묻는다.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몸과 마음을 겸허히 숙여 길을 묻는다. 주여, 저를 참 행복과 생명의 길로 인도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