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향기로운 숲
헤르만 헷세의 작품 중 '동방으로의 여행'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데미안, 싯달타, 수레바퀴 밑에서 등의 소설로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헤르만 헷세는 이 소설에서 참된 리더십의 본질을 깨닫게 해주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여행을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허드렛일을 해주던 ‘레오’라는 인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레오’는 여행단의 잡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종이지만 일행들이 지치고 힘들어 할 때에는 노래를 불러 활기를 넣어 줍니다. 덕분에 여행길은 순조로웠습니다. 그러나 ‘레오’가 사라지면서부터 여행단은 혼란에 빠지고 결국 여행 자체를 포기하기에 이릅니다.
사람들은 ‘레오’가 없어진 후에야 비로소 그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고, ‘레오’가 없는 상태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여행단의 일원이자 이 소설의 주인공은 몇 년을 방랑한 끝에 마침내 ‘레오’를 만나고, 그 여행단을 후원한 교단을 찾게 됩니다. 그는 그때 비로소 종으로만 알던 ‘레오’가 그 교단의 우두머리이자 정신적 지도자인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나를 따르라!'고 외치는 리더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고, 온전히 섬겨주셨던 예수님 같은 리더십을 보여주는 사람은 좀처럼 만날 수 없습니다. 리더십 연구가들은 오늘날처럼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사회가 계속 창조적으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최근 이러한 새로운 리더십의 모형으로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서번트 리더십’은 종(servant)과 지도자(leader), 이 두 역할을 한 사람이 완벽하게 해내는 것입니다. 남을 이끄는 리더의 역할을 하면서 남의 종이 되는 이 역설적인 가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지만, 결국 예수님의 리더십을 연구하면서 이것이 가능한 것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한 마디로 ‘서번트 리더십’은 타인을 위한 헌신과 봉사에 초점을 맞추고, 고객 및 커뮤니티를 최우선으로 여기며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랑과 섬김의 리더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즘 섬김의 리더가 되겠다는 외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위로는 대통령으로부터 아래로는 행정관료들, 그리고 선거에 출마해서 표를 얻어야만 하는 선출직 정치인과 기업인, 교육자, 종교인 등 너나할 것 없이 모두 종이 되겠다고 야단법석을 떨고 있으니 참으로 희한한 풍경입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하던 지도자들이 정작 높은 자리에 앉고 나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태도를 돌변하고 맙니다. 더 높고 이상적인 가치의 추구보다 자신의 영달이나 집단의 이익만을 도모하기 위해 이러한 고귀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마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봄내 호스피스 ‘기쁨의 집’에는 많은 후원자와 봉사자들이 있습니다. 물질로 후원하시는 분, 매일매일 자원해서 환우들을 돌보고 섬기는 분 등 숱한 사랑의 손길과 발길들이 이곳을 오가곤 합니다. 이 모든 행동은 개인의 이익이나 영달과는 거리가 먼 것들입니다.
다만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제자들의 순례의 여정이자 말기암의 고통과 힘겹게 싸우는 환우들을 위해 스스로를 살라 빛이 돼주는 고귀한 희생의 표본일 뿐입니다. 그들의 모습은 비록 종의 모습이지만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 매진하는 진정한 리더들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소설에 나오는 ‘레오’와 같은 분들이 날로날로 늘어나 작은 나눔들이 모여 향기로운 숲을 이루며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기쁨의 집’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샬롬~~
<봄내호스피스 아름다운 동행 2010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