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새벽, 춘천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첫기차를 타고 부족한 잠을 청했다. 듬성듬성 빈 자리가 남아 있는 기차 안에서 사람들은 너나할 것이 잠을 청하기에 바빴다. 긴장이 마냥 풀린 내 몸도 이내 달콤한 잠 속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고요하고 평안하기만 했던 기차 안의 상황은 갑자기 반전되고야 말았다. 느닷없이 울리기 시작한 핸드폰 벨 소리 하나가 사람들의 마음을 서서히 짜증으로 뒤흔기 시작한 것이다.
날카로운 핸드폰 벨 소리에 선 잠을 깬 나는 장장 10여분이나 이어진 젊은 여인의 높은 옥타브의 대화로 인해 불쾌감이 머리 꼭대기까지 치밀어 올랐다.
어느덧 기차는 가평을 지나 청평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잠 잘 생각을 포기하고, 아직도 미명 속에 잠겨 있는 어두운 창밖을 멍하니 내다보며 갈 수 밖에 없었다.
새벽부터 기분을 완전히 잡쳐버린 나의 하루는 안개 속에 갇힌 것처럼 계속 시야가 흐렸다. 때마침 밖에는 우울하게 추적추적 겨울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모든 상황이 진퇴양난이었다. 나는 몽롱한 정신을 깨우기 위해 얼마 전에 소영이가 갖다 꽂아논 책 한 권을 무심히 빼 들었다. 책 제목은 우연찮게도 '배려'였다.
읽을만한 대목을 찾아 책 페이지를 뒤적거리는 동안, 머리에선 언젠가 다른 책에서 읽었던 글 한 줄이 전광석화처럼 스쳐 지나갔다.
<神이 인간의 눈을 두 개로 만든 이유는, 한 개의 눈으로는 자신을 바라보고, 또 한 쪽의 눈으론 남을 살피기 위해서이다.>
요약하면 성찰과 배려를 위한 神의 놀라운 섭리에 의해 인간의 눈은 한 개가 아닌 두 개로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던 '배려'라는 흔한 제목으로 씌여진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만큼 우리는 배려와는 거리가 먼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남과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이 시대에서 배려는 美德이 아니라 당연히 지켜야 할 인간의 道理일텐데...
이 책에 나오는 글처럼 배려는 선택이 아니라 공존의 원칙인 것이다. 더 나아가서 사람은 능력이 아니라 배려로 자신을 지킨다. 그리고 사회는 경쟁이 아니라 배려로 유지된다.
스스로를 위한 배려(솔직), 너와 나를 위한 배려(상대방의 관점에서 보기), 모두를 위한 배려(통찰력)... 이 세 가지 종류의 배려,모두는 우리 삶의 질(행복, 즐거움,성공)을 높이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인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나는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이 없이는 남을 위한 배려도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스스로 내렸다. 남의 눈에 들어 있는 티끌을 흉 보기 전에 내 눈에 박혀 있는 들보를 먼저 제대로 살펴 보고 있는가, 스스로 自問하면서 날마다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 같다.
오, 주님... 나는 여테껏 주제 넘게 남의 눈에 들어 있는 작은 티끌만 쳐다 보고, 남에게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고 살았습니다. 주님, 나의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시고,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남은 생애, 매일매일 한 눈으로는 나의 잘못을 들여다 보고, 다른 한 눈으로는 남의 어려움과 괴로움을 살필 줄 아는 깊은 성찰과 배려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해가 다가기 전, 새벽기차 안의 한 여인을 통해 하나님 말씀을 깊이 깨달을 수 있게 은혜 베풀어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인 모니터 화면에 떠 있는 배려의 다섯 가지 실천 포인트를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1. 배려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다.
2. 배려는 받기 전에 먼저 주는 것이다.
3. 배려는 날마다 노력하는 것이다.
3. 배려는 자연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5. 배려는 사소하지만 위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