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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시100선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44) - 비밀의 문

 

 

비밀의 문

 

숨고 싶다

새들이 떠난 빈숲

비 젖은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여린 잎새 하나로

고요히 흔들리고 싶다

 

숨고 싶다

망망대해 속 일엽편주

튀어오르는

물거품 하나로

하얗게 부서지고 싶다

 

숨고 싶다

크로노스, 그 째깍거리는

찰라의 시각

초침 밖으로

불현듯 벗어나고 싶다

 

숨고 싶다

아무도 모르는 그곳

어둠의 닻을 내리고

말 못하는 짐승처럼

웅크려 울고 싶다

 

머리카락 보일세라

내 누추한 백발,

삭도로 깨끗이 밀고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

그 묵묵한 침묵 속으로

호올로 들어가

 

비밀의 문

걸어 잠그고

홀연히 숨어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