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리나무 아래서
기억상실증에 걸려있던 아버지는
늘 빈 사발처럼 허전한 몸짓으로
대문 밖 상수리나무 밑에 앉아 계셨다
나는 아버지가 무슨 힘으로
그토록 오랫동안 禁食하며
버틸 수 있었을까 알 길이 없다
다만 흐린 눈빛 속에 아롱지는
아버지의 따뜻한 눈물
몇 방울을 바라보며
삶의 終止符를 찍는다는 것이
몇 방울을 바라보며
삶의 終止符를 찍는다는 것이
비에 젖은 雨衣를 벗듯
그렇게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민큼은
아니라는 것민큼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늦은 저녁 홀로 상수리나무 밑에 앉아
가을바람에 후드득 떨어지는
상수리 몇 알을 바라보니
그 옛날 날다람쥐 같은 우리들에게
맛있는 먹이를 주었던
도토리 같이 싱싱한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난다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난다
저녁이면 으깨지고 부서진 몸으로
우리들 밥상에 올라오던
도토리묵 같이 물컹한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