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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시100선

상수리나무 아래서

                               

 

상수리나무 아래서

 

기억상실증에 걸려있던 아버지는
늘 빈 사발처럼 허전한 몸짓으로

대문 밖 상수리나무 밑에 앉아 계셨다

 
나는 아버지가 무슨 힘으로
그토록 오랫동안 禁食하며
버틸 수 있었을까 알 길이 없다
 
다만 흐린 눈빛 속에 아롱지는
아버지의 따뜻한 눈물
몇 방울을 바라보며
 삶의 終止符를 찍는다는 것이

 비에 젖은 雨衣를 벗듯
그렇게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민큼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늦은 저녁 홀로 상수리나무 밑에 앉아
가을바람에 후드득 떨어지는
상수리 몇 알을 바라보니
 
그 옛날 날다람쥐 같은 우리들에게
맛있는 먹이를 주었던
도토리 같이 싱싱한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난다
 
저녁이면 으깨지고 부서진 몸으로
우리들 밥상에 올라오던
도토리묵 같이 물컹한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