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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시100선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12) - 새장에는 더 이상 새들이 살지 않는다

 

 

 새장에는 더 이상 새들이 살지 않는다

 

철새들은 가을이면 돌아가 버립니다

한여름 놀던 저수지 근방엔

개부들 몇 개만 남고

가을은 하릴없이 가랑잎을 버립니다

 

텅 빈 숲속에 한 줄기 햇빛이 비치면

웅덩이 속의 물이 서서히 마릅니

숲속의 비어있는 무게만큼

바람이 스산히 불어 옵니다

 

비가 그치고 물이 고인 웅덩이에

은사시나뭇잎 하나가 반짝입니다

죽은 새들의 발톱이 조금씩 부서지며

한 줌의 먼지로 다시 살아 납니다

 

숲속엔 두 얼굴의 가을이 보입니다

철새가 날아간 하늘처럼 비어있거나

빈 숲속의 바람처럼 가득합니다

맑은 물방울 속의 햇살처럼 투명하거나

흐린 하늘의 별빛처럼 그늘집니다

 

가을은 우리에게 그 무엇으로 다가오거나

아무 것도 아닌 채로 떠나갑니다

모두가 떠난 빈숲에는

가을 이야기만 쓸쓸히 남아 있고

새장에는 더 이상 새들이 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