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세상
가을햇살이 테라스의 유리창
너머로 고요히 스며드는 오후
잘 익은 사과 몇 알의
향기로움처럼
아내의 화실엔 브람스의
실내악이 흐르고 있었다
늘 완벽한 평화를 꿈꾸던
한 청년이
십자가에 매달린 채
고개를 떨구고 있었고
아내가 그린 20호짜리
해바라기 그림은
푸른 대못 위에
낮게 걸려 있었다
님만 바라보다 새까맣게
타버린 가슴속
가을호수보다 깊은 은총
가을하늘보다 높은 사랑
씨앗으로 단단히 여물어 가는데
한 줌 마른 꽃잎으로 스러져 가는
황혼의 언저리에서
나는 누구를 그리워하며
사과 한 입의 쓸쓸함을
베어물고 있는가
우리는 때때로
하늘과 땅 사이
그 아득한 절망 때문에
꿈꾸는지 모른다
십자가의 청년처럼
모가지가 부러진
해바라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