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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윤아의 그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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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처럼 온 몸과 맘이 마냥 늘어지는 늦봄의 오후엔 손수 끓인 커피 한 잔 마시며 좋은 문학작품이나 천천히 음미하며 시간을 보내는 편이 삶을 훨씬 가볍고 향기롭게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시간은 예전부터 알아온 윤아가 보내온 자신의 그림집 '윤아의 그림일기' 를 손에 들고 한 쪽 한 쪽 꼼꼼히 살펴 내려 가고 있습니다.

"나의 몸이 유난히 떨리는 것은 장애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날개가 돋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파랑새가 되어 하늘을 훨훨 날 수 있겠지요."

태어날 때부터 '선천성 대사효소결핍증'이라는 희귀질환을 앓아 몸의 발달뿐 아니라 두뇌의 발달마저 지체돼 있는 장애 처녀의 말이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밝고 희망찬 의지의 표현이 서문을 장식하고 있어, 마주 치는 순간 내 몸도 마치 양쪽 겨드랑이 끝에서 살을 찢고 두 날개가 돋아나는 것처럼 전율이 돋았습니다.

윤아가 그린 그림들은 일반작가들에게서 찾을 수 없는 때묻지 않은 맑음과 무한한 상상력, 원초적 생명 에너지가 듬뿍 담겨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천재 화가 밀레나 고흐의 작품에서 조차 맛볼 수 없는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 가운데 존재하는 건강하고 순수한개체들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그림속에 진솔하게 담겨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화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세상의 편견을 딛고 하루 15시간 이상을 화폭에 매달리며 예술혼을 불태워 온 그녀- 그녀만의 남다른 삶의 여정과 신앙의 발자취가 함께 어려 있는 그림책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마음 깊숙이 우러나오는 감동과 은혜로  어느덧 눈가엔 살며시 이슬이 맺습니다.

화집 속엔 그녀의 붓끝을 통해서 새와 나무와 꽃과 물고기, 그리고 동물들이 독특한 터치로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볼 수 없었고, 만날 수 없었고, 느낄 수 없었던 그녀만이 경험했던 맑고 순수한 자연의 세계가 따뜻하고 아름다운 감성으로 눈부시게 재창조 되고 있는 것입니다.

어제는 어린이 날이었습니다. 문득 예수께서 어린이들을 비유로 제자들에게 이르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 나라를 어린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마가복음 10:15 말씀)

어린이들과 같은 마음으로 거리낌 없이 주님 앞으로 나아가 온전히 순종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천국의 그림자조차 밟을 수 없게 된다는 무척이나 의미심장한 말씀이 아닐까요?

어린이와 같은 마음이란 도대체 어떤 마음일까 잠시 생각해 봅니다. 어린이들의 마음속에는 일곱 무지개빛보다도 더 영롱한 색깔들이 곱게 물들어 있겠지만, 나는 그 중에서 특별히 하나만 꼽으라 한다면 어른들처럼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은 순수한 영혼의 색깔이 어려있는 무채색 같은 마음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이 시간 남다른 아픔괴 시련을 딛고 꿋꿋이 살아가는 윤아 양의 순진무구한 영혼의 세계를 그림 몇 편으로 엿보며 그 동안 내 생각의 잣대로만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평가하고 차별했던 어리석음을 뉘우치게 됩니다.

그리고 참다운 예술이란 현란한 테크닉보다는 진실된 생각과 마음을 모두어 자신의 전부를 하나님께 내드리는 정성과 헌신이 먼저임을 새삼스레 깨우치게 됩니다.

누군가 나의 부족한 시를 읽어 줄 때 내 마음과 영혼의 숨결까지도 숨죽이며 맛보아 준다면 부질없는 글이나 끄적이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늦은 봄날, 춘곤증이 우리의 영혼까지 잠들게 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영육 간에 강건함을 구하기 위해 깨어 기도해야겠습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