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양
하루에 한 번 쯤
몰래 만나 포옹하고
한 주에 한 번 쯤
몰래 만나 입 맞추고
한 달에 한 번 쯤
몰래 만나 뜨겁게 죄를 짓던 우리
어느 날 아침 불쑥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치뜨며 말했다
"우리 이제 없었던 일로 해요"
그녀는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뒤도 돌아 보지 않은 채
휑 하니 사라져버렸다
원, 세상에...
神이 아닌 이상 무슨 재주로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로
통째로 무를 수 있단 말인가
너와 내가 저지른 숱한 죄들을
없었던 일로 단번에 날려버리기엔
우리의 비밀을 알고 있는
새앙쥐들이 너무 많아
그러나, 있었던 일을 있었던 일로
솔직히 까발린다면
우리는 너무나 부끄러워
둘 다 혀를 깨물고 죽고 말거야
그래서, 우리 같은 어둠의 자식들에겐
대신 죄 값을 치르고
착하게 죽어줄 흠없는 어린 양이 필요한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