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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시100선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55) - 겨울연가

 

겨울연가

 

겨울에는 시를 쓰지 않는다
단지 흔들리는 불빛 아래서
연필로만 시를 썼던
어느 시인의 모습을 생각한다

 

그와 걸었던 들벚나무 숲속의
자욱한 안개에 대하여,

시든 안개꽃 몇 묶음의 절망에 대하여

 

카키색 바바리코트 위로

풀풀풀 흩날리던

몇 가닥의 마른 눈발과

푸른 숲속의 대설주의보에 대하여

 

우리들의 덧없는 인연에 대하여,

당신이 좋아하던 엘레지風의

젖은 샹송에 대하여

 

후평동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

막 시켜 놓은

커피 한 잔의 따스함과
하얗게 구겨져 있는
주머니 속의 원고지 몇 장에 대하여


겨울에는 시를 쓰지 않는다
단지 메마른 빵 몇 조각을 씹으며
허기진사랑을 그리워하던
어느 시인의 모습을 생각한다

 

오늘도 그날처럼

몇 가닥의 눈발이

습관처럼 어깨를 적시는데

 

잘 깎인 연필 한 자루의 추억
오랫 동안 내 마음 속에서

흐린 램프등처럼

묵묵히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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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평동: 강원도 춘천에 있는 동네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