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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꽃 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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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각종 모임으로 분주합니다. 저도 예외는 아니어서 여기저기에서 한 해가 가기 전에 얼굴이라도 보자는 연락들이 많이 옵니다. 그러나 술을  끊은 지도 오래되고, 그 동안 건강 때문에 가급적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는 멀리 해온 터라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모임 참석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제는 예전에 활동을 같이 했던 환경단체에서 송년회를 한다기에 기쁜 마음으로 참석을 했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코 앞에 두고 있어서인지 정, 재계를 막론하여 거물급 인사들이 눈에 띄었고, 그 중에는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 하는 반가운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장황한 회장단들의 인삿말에 이어 본격적으로 여흥이 시작되었고, 여기저기서 아는 얼굴들로부터 술 잔이 날아들기 시작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주거니 받거니, 부어라 마셔라 실컷 주흥에 겨워 음주가무를 즐겼을 텐데, 이제는 왠지 그런 것들하고는 궁합이 잘 맞지 않을 뿐더러 그 동안 힘들게 회복했던 건강도 염려되어 주는 술잔을 그냥 받아 놓기만 하고, 흥겹게 진행되고 있는 스테이지에만 눈길을 쏟았습니다.

몇몇 초대가수의 노래가 끝나고, 이름이 생소한 백인 혼혈가수 한 분이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오리지날 국산 가수하고는 음색도 조금은 특이한데다가 흘러간 옛노래를 부르는 창법이 여간 구성진 게 아니어서 2절까지 이어지는 노랫말에 순간적으로 푹 빠져 들게 되었습니다. 노래 제목은 한국전쟁 이후 한창 유행했던 원방연 선생의 불멸의 히트곡 '꽃 중의 꽃'이었습니다.

"꽃 중의 꽃 무궁화꽃 삼천만의 가슴에 피었네 피었네 영원히 피었네 백두산 상상봉에 한라산 언덕 위에 민족의 얼이 되어 아름답게 피었네"

"별 중의 별 창공의 별 삼천만의 가슴에 빛나네 빛나네 영원히 빛나네 이 강산 온 누리에 조국의 하늘 위에 민족의 꽃이 되어 아름답게 빛나네"

순간적으로 우리나라 전통 트로트 가요도 이토록 예술적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가슴 한 구석에서 짠한 감동이 밀려 들었습니다. 노래를 부른 가수와 합석을 하게 되었고, 나는 그 분에게 솔직한 찬사의 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잠시 그와 나눈 대화 가운데서 그가 한국전쟁 이후 갓 태어난 영국계 혼혈인임을 알게 되었고, 이 노래는 무궁화로 상징되는 어느 여성 정치인에게 드리는 눈물젖은 獻歌임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분의 나름대로의 간절한 애국심과 이 노랫말이 잘 어우러져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큰 감동을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저는 줄곧 마음속으로 그 노래를 흥얼거려 보았습니다. 부르면 부를수록 정말 가슴이 뜨거워지는 훌륭한 가사와 곡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저의 뇌리에 또 하나의 노랫말이 번득 스쳐가는 것이었습니다.

'꽃 중의 꽃 - 샤론의 꽃'이었습니다. 찬송가 89장에 나오는 '샤론의 꽃'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영어명으로는 'rose of sharon'입니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샤론의 장미'가 아닌 '샤론의 무궁화'입니다. '꽃 중의 꽃 = 무궁화 꽃 = 샤론의 꽃'이라는 공식이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대입되자 저절로 노랫말 하나가 툭 튀어나온 것이었습니다.

"꽃 중의 꽃 샤론의 꽃 너와 나의 가슴에 피었네 피었네 영원히 피었네 산 너머 바다 건너 세상의 땅끝까지 십자가 보혈되어 거룩하게 피었네"

앞으로 유행가를 부를 기회가 온다면 주저하지 않고 이 노래를 부르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집에 돌아와 조금은 피곤한 몸을 자리에 뉘이자마자 가슴 속에 형용할 수 없는 감사와 기쁨이 밀려들어 왔습니다. 매일매일 범사에 감사하는 평온한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