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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시100선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47) - 비둘기

 

 

비둘기

 

간이역 대합실

낡은 벤치에 앉아

오지도 않는 기차를 기다리는 일이

얼마나 외로운 것인가

 

견고한 부리로 내 발등을 쪼는 너에게

빈 주머니를 털어

부스러기 몇 개 던져주는 일이

얼마나 멋적은 것인가

 

붉은 머리 띠를 두르고

분노의 주먹을 휘두르며

광장을 점령하고 있는 칼바람의

거친 숨결이 미치지 않는 곳

 

원심력 밖으로 밀려난

내 생의 한 시각이 멈춰서고

바람도 숨 죽인 채

미동도 하지 않는 적막한 진공 속

 

가슴에 품은 푸른 빛 한 줌

허허로이 날려보내고

함성으로 달려오는 기차소릴

귀 막아버린 나의 양심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가

 

지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의미없는 시 몇 줄 쓰려고

허기진 영혼을 쪼고 있는

내 생각의 부리가

얼마나 피멍이 들고 있는지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기차를 기다리며

너에게 묻고 또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