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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삐딱한 우산이 아름답다

 

퇴근 무렵, 학교로 손님 한 분이 찾아왔습니다. 신촌 근처에서 모임이 있는데 나와 함께 가고 싶어 들렀다고 합니다. 저도 그 날은 특별한 약속이 없어 그분과 동행하기로 마음 먹고 길을 나섰습니다.

밖으로 나가니 오후 내내 말갛게 개였던 하늘에서 갑자기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안되겠다 싶어서 저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 작은 우산 하나를 찾아들고 나왔습니다.

둘이 함께 비좁은 우산 속에서 어깨를 맞대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걷다보니 돌연 가느다란 빗줄기가 굵은 장대비로 돌변하여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택시를 잡아탈까 생각도 해봤지만 雨中에 택시가 그리 쉽게 잡히지 않을 것 같아 그냥 걷기로 했습니다.

빗줄기는 더욱 굵어지고 한 우산 속에 꼼짝없이 갇히게 된 우리는 급기야 다정한 연인처럼 팔짱까지 끼게 되었습니다. 나는 조금이라도 상대방이 비를 덜 맞게 하도록 우산을 자꾸 옆으로 밀어댔고, 상대방도 똑같이 우산을 내 쪽으로 쏠리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덧 목적지에 다다르자 우리는 그 작은 우산 속을 빠져나와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우산을 함께 쓰고 왔음에도 거의 全身이 비에 젖은 새앙쥐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얼굴에 흐르는 빗방울을 털어내다 잠시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동시에 깔깔대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문득 마음 한 구석으로부터 작은 행복감이 밀려왔습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물론 서로를 배려해 주려고 애쓴 아름다운 마음씨 때문이겠지요. 모처럼 즐겁고 행복한 데이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