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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시100선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19) - 마른 꽃잎 하나를 바라보며 마른 꽃잎 하나를 바라보며 라일락이 피는 오후, 그리움처럼 꽃향기가 번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책갈피마다 마른 꽃잎 한 개씩을 주워 담는다 어느 날 습기가 말라버려 눌리워진 꽃잎 하나를 낡은 책갈피 속에서 찾았을 때 우리는 다시 오월의 라일락 향기처럼 잊혀진 옛사랑을 떠올릴 수 있겠지 추억이란 내 안에 있는 그리움이 마른 꽃잎 한 장으로 눌리워져 있는 것 지울 수 없는 얼굴 하나 여여(如如)히 빈 가슴속에 묻어 두는 것 더보기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20) - 가을비와 코스모스 가을비와 코스모스 1. 가을에 내리는 비는 우리 마음을 적요하게 한다 문득 나뭇잎에 덮여있는 먼지들이 깨끗이 사라진 그 환한 풍경 가을의 한 복판에서 코스모스가 핀다 어느 길가에든 흔히 피어있는 꽃 혼자 피어 있을 때는 그 아름다움이 감춰져 있는 꽃 우리들 기억 속에 문신처럼 새겨져 있는 꽃 낡은 앨범 속에서 찾아낸 코스모스 흑백 사진 몇 장 2, 물기를 머금은 꽃봉오릴 너의 얼굴에 터뜨린다 툭 소리와 함께 까르르 터져나오는 웃음소리 정지된 기억 속에 멈춰 놓고 싶은 꽃더미 속의 너의 얼굴 약간은 마르고 목이 긴, 창백한 흰 색 혹은 적색의 이미지 가을, 혹은 지나가 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 3. 비 오는 날의 코스모스는 더욱 청초하다 맑고 투명한 기억의 한 복판에서 발견되는 꽃잎 하나 의미없는 몇 구절의.. 더보기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23) - 내 사랑 샤론의 꽃 내 사랑 샤론의 꽃 당신이 나의 꽃인 것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피어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나의 꽃인 것은 내가 날마다 그 향기에 젖어 살기 때문입니다 산그리메 지는 골짜기에 하늘마음 담아 빛고운 한 송이 天上花여, 피 묻은 십자가 위에 부활의 靈으로 피어나는 한 떨기 보혈의 꽃이여, 역사의 굽이마다 민족의 魂으로 피어나는 충절의 花身이여, 애통하는 자의 가슴속에 피소서 가난한 자의 가슴속에 피소서 병든 자의 가슴속에 피소서 주리고 목마른 자의 가슴속에 피소서 찢어진 조국강산 위에 피소서 그 傷心의 자리마다 거룩하고 아름답게 피소서 영원무궁토록 향기롭게 피소서 내 사랑 샤론의 꽃이여! *************************** 무궁화(Hibiscus syriacus). 이 꽃의 나무는 낙엽수로서 꽃.. 더보기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14) - 꿈꾸는 세상 꿈꾸는 세상 가을햇살이 테라스의 유리창 너머로 고요히 스며드는 오후 잘 익은 사과 몇 알의 향기로움처럼 아내의 화실엔 브람스의 실내악이 흐르고 있었다 늘 완벽한 평화를 꿈꾸던 한 청년이 십자가에 매달린 채 고개를 떨구고 있었고 아내가 그린 20호짜리 해바라기 그림은 푸른 대못 위에 낮게 걸려 있었다 님만 바라보다 새까맣게 타버린 가슴속 가을호수보다 깊은 은총 가을하늘보다 높은 사랑 씨앗으로 단단히 여물어 가는데 한 줌 마른 꽃잎으로 스러져 가는 황혼의 언저리에서 나는 누구를 그리워하며 사과 한 입의 쓸쓸함을 베어물고 있는가 우리는 때때로 하늘과 땅 사이 그 아득한 절망 때문에 꿈꾸는지 모른다 십자가의 청년처럼 모가지가 부러진 해바라기처럼 더보기
下直 下直 그토록 뜨거웠던 태양은 금세 어디로 숨었을까 은사시나무 위에 걸려있던 햇빛은 아직도 그대로인데 그놈의 매미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세상이 무너진 꽃더미처럼 조용하다 더보기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26) - 길 길 이 땅의 모든 길에는 핏방울이 뿌려져 있다 막힌 산허리를 뚫고 묶인 쇠사슬을 끊고 절망의 담벽을 부숴 길을 낸 사람들 순교자의 노동자의 혁명가의 어린 양의 핏값이 아니었다면 아직도 길은 거기에 없었으리라 이제 돌아가기엔 너무 먼 해 저문 인생길에서 다시 길을 묻는다 나의 마음에서 너의 마음으로 내려가는 누르고 검은 황톳길 빈 들의 단풍나무처럼 스스로를 버려 붉은 융단이 되는 꽃보다 아름다운 황혼길 길 위에서 또 하나의 길을 찾는 속절없는 가을의 끝 더보기
사랑의 법칙 사랑의 법칙 살다가 죽는 것이 세상의 법칙이라면 죽어야 사는 것은 하늘의 법칙이다 가슴을 핏빛으로 물들인 한 사내가, 꽃이 되어 다시 피는 이 아침 오늘도 내 영혼에 문신처럼 새겨져 있는 이름 하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받은 사람들아, 너희는 이제 하나님의 존재이니 하늘의 도를 따라야 하리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너희는 이제 신령한 마음으로 사랑의 길을 걸어야 하리 사랑의 법칙은 오직 하나,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 피 묻은 십자가 위에서 하나밖에 없는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버리는 것 더보기
내 마음의 빈 자리에 내 마음의 빈 자리에 주님이 넘치는 물질 주셨을 때 내 안에 감사가 없었습니다 주님이 넘치는 건강 주셨을 때 내 안에 헌신이 없었습니다 주님이 주신 많은 은사들 내 정욕만을 위해 허비하다가 삶의 길을 잃었습니다 이제 나 병들었고 이제 나 부요치 못하나 주님이 날 위해 흘리신 눈물 내가 보았고 주님이 날 위로하시는 음성 내가 들었으니 이제 나 영혼의 나침반을 주님께로만 향하고 은빛 연어떼가 거친 파도를 거슬러 올라가듯 다시 주님 품으로 돌아갑니다 주님 내 텅 빈 영혼 텅 빈 가슴 텅 빈 두손 주님께 모두 맡기오니 오직 믿음으로 오직 말씀으로 오직 은혜로만 가득 차게 하소서 푸른 올리브나무처럼 모진 비바람에도 상치 않는 참으로 단단한 열매 하나 내 마음의 빈 자리에 가만히 맺게 하소서 아멘! 더보기
열대야 熱帶夜 오늘밤 찻물이 끓듯 나를 펄펄 끓게 하는 것은 肉身의 불이 아니다 面壁을 하며 무릎 꿇은 가난한 마음 속에 炯炯히 타오르는 성령의 불꽃 그 서늘한 光輝 祝盃를 들고 충만한 가슴으로 노래하며 身熱을 앓는 이 밤 기름부으신 자의 특별한 恩寵만이 가득 차고 넘쳐 하늘불 활활 타는 깊고도 아득한 밤 아, 기쁘고 황홀하여라 거룩한 빛 서늘한 긴긴 축제의 밤이여! 더보기
그물 그물 해어진 그물코를 꿰매며 아이들이 바람을 데리고 놀고 있다 아버지는 밧줄처럼 굵은 팔뚝을 걷어올리고 깊은 곳에다 그물을 던지신다 무수히 많은 조개껍질들이 산산히 부서진 채 물거품에 휩쓸려다니고 있고 아버지는 잠못 이루며 뒤척이는 바닷속에 엄숙한 몸짓으로 그물을 던지신다 날선 검처럼 울어대는 미친 칼바람소리에 어부들은 두려워 떨고 있지만 강하고 담대하라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빈 그물은 오늘도 거침없이 깊은 바닷속으로 강인하게 침몰하고 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