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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시100선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36) - 별을 사랑한 달팽이 별을 사랑한 달팽이 내 사랑, 그대 마음속 머문 그 자리 얼마나 작은지 나 알고 있지만 내 눈빛, 그대 눈동자 닿는 그 거리 얼마나 먼지 나 가늠할 수 없지만 풀잎에 앉은 달팽이처럼 내 마음 밤마다 그대 바라며 하염없는 그리움에 젖네 그대 아스라이 먼 곳에서 푸르게 빛나고 나 작은 몸뚱이 웅크리며 숨죽여 우는 이 시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조금씩 기어서라도 나 그대에게 가고파 아, 닿을듯 닿을듯 아득한 始原의 숨결이여! 더보기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7) - 물 같은 사랑 물 같은 사랑 폭포수처럼 장엄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맑은 실로폰 소리로 떨어져 똑. 똑. 똑. 그대 빈 가슴을 두드리는 빗방울이면 좋겠다 서로 길동무 되어 먼 바다를 향해 조금씩 조금씩 낮게 낮게 흘러 갔으면 좋겠다 더보기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65) - 꽃의 믿음 꽃의 믿음 꽃을 바라보던 눈으로 세상을 보시게 꽃을 가꾸던 마음으로 꿈을 키우시게 겨울이 가면 새봄이 올 것을 믿고 인내하는 꽃의 온유함처럼 언제나 마음밭에 믿음의 뿌리 꼿꼿이 내리고 하늘빛 즈려밟고 천국 가는 길 넉넉히 예비해 두시게 더보기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30) - 아가위나무에 대하여 아가위나무에 대하여 숲속에 아가위나무 한 그루가 서있습니다 아가위나무는 늘 혼자입니다 비가 내린 날 아가위나무는 연한 속살의 새잎을 머리에 이고 비를 맞습니다 하늘은 흐리고 안개비는 내리고 아가위나무는 비를 피할 우산이 없습니다 우리들은 얼룩점이 박힌 아가위나무를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아가위나무 주변은 파란 잔디밭입니다 키 작은 잔디들을 내려다 보며 아가위나무 하나가 씩씩하게 서있습니다 바람이 불면 아가위나무는 상한 이파리 몇 장 잔디밭에 내려줍니다 키 작은 잔디들은 아가위나뭇잎으로 만든 모자를 쓰고, 비오는 날에는 아가위나뭇잎 우산을 쓰고 지냅니다 아가위나무의 상한 이파리들은 꼬마잔디들을 튼튼하게 보호해줍니다 늦가을이 되면 잔디밭은 온통 아가위나뭇잎으로 수북히 쌓입니다 아가위나뭇잎은 잔디들의 이불이 되.. 더보기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64) - 블루 크리스마스 블루 크리스마스 복 되고 기쁜 날, 그러나 나는 차마 하늘을 우러르지 못하고 부르짖어 기도하던 세리처럼 여전히 죄인입니다 새벽마다 가슴에 대못을 치고서야 비로소 내 기도가 핏방울이 되어 당신 殿에 떨어집니다 베들레헴 허름한 마굿간, 별을 따라 찾아온 동방박사는 당신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건만 나는 아무것도 드릴 게 없습니다 천사와 목자, 소와 낙타도 당신의 곁을 지켰거늘 지금 나는 당신을 떠나 너무 멀리 와 있습니다 주님, 이 죄인을 용서하시고 이 시간 내 마음의 빈 자리에 좌정하옵소서 드릴 것은 단 한 가지, 가난한 마음뿐이오니 주님, 이 거룩하고 고요한 밤에 보혈의 십자가로 나의 죄를 말갛게 씻기시어 정결한 산 제물로 기뻐 받아주옵소서 더보기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25) - 이 가을에 이 가을에 벼들이 누렇게 익어 황금들판 물결치는 이 가을에 나도 마음이 선하게 여물어 풍성한 열매를 맺고 싶네 사랑의 열매... 기쁨의 열매... 화평의 열매... 인내의 열매... 자비의 열매... 양선의 열매... 충성의 열매... 온유의 열매... 절제의 열매 잎만 무성하고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같지 아니하고 저 너른 들판을 황금색깔로 물들이는 고개 숙인 벼들처럼 그렇게 풍성한 성령의 열매들을 맺어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고 싶네 더보기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2) - 폭염 폭염 쪽빛으로 곱던 하늘은 오늘따라 내 머리를 납덩이로 짓누른다 후텁지근한 바람은 부르튼 입술로 빌딩의 유리창을 속절없이 훑고 지나간다 가로수의 나뭇잎들이 물기를 빼앗긴 채 시름시름 앓고 있다 서울의 거리는 폭염으로 찌들고 실직의 한파에 몸을 떠는 선량한 시민들은 적색신호등 앞에서 죄 없는 양심을 어루만지며 숨 죽이고 서있다 더보기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47) - 비둘기 비둘기 간이역 대합실 낡은 벤치에 앉아 오지도 않는 기차를 기다리는 일이 얼마나 외로운 것인가 견고한 부리로 내 발등을 쪼는 너에게 빈 주머니를 털어 부스러기 몇 개 던져주는 일이 얼마나 멋적은 것인가 붉은 머리 띠를 두르고 분노의 주먹을 휘두르며 광장을 점령하고 있는 칼바람의 거친 숨결이 미치지 않는 곳 원심력 밖으로 밀려난 내 생의 한 시각이 멈춰서고 바람도 숨 죽인 채 미동도 하지 않는 적막한 진공 속 가슴에 품은 푸른 빛 한 줌 허허로이 날려보내고 함성으로 달려오는 기차소릴 귀 막아버린 나의 양심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가 지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의미없는 시 몇 줄 쓰려고 허기진 영혼을 쪼고 있는 내 생각의 부리가 얼마나 피멍이 들고 있는지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기차를 기다리며 너에게 묻고 .. 더보기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78) - 침묵하는 봄 침묵하는 봄 차창 밖으로 빗방울이 투명하게 내리꽂히고 있었다 기차가 흔들릴 때마다 산들도 덩달아 어깨춤을 추며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꽃샘바람이 마른 나뭇가지를 세차게 흔들어 대니 산새들의 비명소리가 희뿌연 안개처럼 낮게 흩어지고 있었다 안개 속에서 물총새 한 마리가 젖은 날개죽지를 펴고 음울하게 날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가 말이 없었다 기차가 또 한 번 심하게 흔들리자 누군가의 손에 든 신문 속에서 굵은 헤드라인 하나가 높은 옥타브의 음표처럼 허공으로 튕겨져 나갔다 ‘두려움, 마스크...기도’ 문득, 무거운 침묵 속에 잠겨있던 사람들의 귓전에 물총새의 외마디 비명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아직 어디에도 봄은 오지 않았다 더보기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89) - 고백 고백 믿음의 자리를 펴고 홀로 기도하는 이 시간, 마음을 낮추고 두 손을 모아 당신의 크신 은총 간구합니다 입술과 혀로만이 아닌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친히 나를 위해 비시오사 어둠의 영들 불사르시어 램프등처럼 흐린 심령 거룩한 빛으로 환히 밝혀주옵소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오래 참아 부활의 첫 열매 되신 예수그리스도,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 같지 않게 하시고 언약의 열매 풍성히 되게 하옵소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