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름다운시100선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37) - 가을연꽃 가을연꽃 빛으로 뽑아올린 한 촉의 맑은 꽃 온누리의 정수리에 피어난 빛의 꽃 송이송이 등불을 켠다 한 촉의 빛살로 일어선 세상, 맑은 눈동자의 아이들은 잠에서 깨어나 동네마다 환하게 빛남의 세상을 연다 깊어가는 가을 밤, 빛의 꽃 송이송이 연등을 켠다 더보기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33) - 맨드라미 맨드라미 가을은 기도하기 좋은 계절 나는 없고 그리스도만 살아 은혜가 풍성히 익어가는 계절 하늘이 높아 맑고 고요한 날 푸른줄무늬 방울나비 한 마리 떠다니는 꽃밭에서 촛대처럼 붉은 맨드라미 한 송이 향기를 안으로 감춘 채 꿈꾸듯 신령하게 불타고 있다 더보기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16) - 갈대밭 갈대밭 가슴이 시린 날에는 세월교* 근처 갈대밭으로 가자 바람이 낮게 흐르는 곳 은빛물결로 흔들리는 갈대들을 만나보자 가을햇살이 마른 풀잎 위로 하얗게 부서지는 오후 갈대의 야윈 가슴에 귀를 대고 흐느끼며 우는 소릴 들어보자 바람이 사방으로 구르는 강 언덕에 서서 더러는 구겨지고 더러는 짓밟혀 꺾여 있는 상한 갈대의 허리를 일으켜 세우자 참혹한 가을의 현기(眩氣)처럼 풀씨들은 어지럽게 흩날리고, 흩날려 버리고 잘 가거라, 잘 가거라 마른 손을 흔드는 자욱한 슬픔의 갈대밭 *세월교: 춘천시 동면 소양댐 물줄기 위에 놓여있는 다리 더보기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3) - 엔젤 트럼펫 엔젤 트럼펫 위장 속의 푸른 알약 몇 개처럼 事物은 늘 二重的이다 作用이거나 反作用이거나 영원하거나 덧없거나 부드럽거나 銳利하거나 진실이거나 거짓이거나 혹은, 은종이거나 나팔이거나 나팔은 하늘을 향해 팡파레를 울리고 은종은 땅을 향해 짤랑거린다 밤이 맞도록 내밀하게 익어가는 가을의 소리들... 이 아침, 빈 가지 끝에서 천사의 나팔꽃 몇 송이 묵묵히 開花한다 더보기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44) - 비밀의 문 비밀의 문 숨고 싶다 새들이 떠난 빈숲 비 젖은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여린 잎새 하나로 고요히 흔들리고 싶다 숨고 싶다 망망대해 속 일엽편주 튀어오르는 물거품 하나로 하얗게 부서지고 싶다 숨고 싶다 크로노스, 그 째깍거리는 찰라의 시각 초침 밖으로 불현듯 벗어나고 싶다 숨고 싶다 아무도 모르는 그곳 어둠의 닻을 내리고 말 못하는 짐승처럼 웅크려 울고 싶다 머리카락 보일세라 내 누추한 백발, 삭도로 깨끗이 밀고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 그 묵묵한 침묵 속으로 호올로 들어가 비밀의 문 걸어 잠그고 홀연히 숨어버리고 싶다 더보기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54) - 보이지 않는 손 보이지 않는 손 3월에 가장 먼저 피는 꽃은 산에 들에 피는 꽃이 아니다 너와 나의 가슴속에 피는 열망의 꽃이다 봉긋이 솟아나는 설레임의 꽃봉오리다 부러진 꽃대를 일으켜 세우는 보이지 않는 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봄꽃은 고통으로 신음하는 자의 가슴에서 굳은 흙더미를 밀어내는 자비와 긍휼의 감춰진 손길이다 더보기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57) - 응답 응답 푸른 정맥 속에 주사바늘이 꽂힌다 힘 없는 팔뚝 위로 무수히 난 바늘자국들 날마다 위장 속의 청홍색 알약 몇 개와 세파계 항생제 수액 몇 병에 뱡든 몸을 의지하는 삶이 안쓰럽다 도와주세요 살려 주세요 깨끗이 고쳐 주세요 수액이 발끝에서 독한 세균들과 싸우는 동안 나는 신음처럼 기도를 뱉아낸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삶의 고비 고비마다 당신을 향해 부르짖어 기도하는 숨결이 있었기에 이 순간, 인내는 눈물처럼 따스하다 빈병 끝으로 느리게 떨어지는 마지막 몇 방울 "내 사랑하는 아들아, 두려워하지 마라" 묵언의 응답이 가슴 한 자락에서 세미하게 저며온다 더보기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56) - 병실에서 병실에서 아침에 눈을 뜨면 창가에 어울지던 햇살 몇 올이 그립다 보드러운 빵 한 조각, 향기로운 한 잔의 커피로 목을 축이던 조촐한 소찬(素餐)이 그립다 텅 빈 가슴속에 신선한 바람 한 모금 가득 채워넣고 범사에 감사하며 기도하던 순명(順命)의 시간이 그립다 어스름히 해그림자 지면 누군가의 안부가 궁금해져 문자하고 전화하던 사소한 정이 그립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통은 그리움이라 했던가 찬비 내리는 밤, 휑한 마음마저 낮은 온도로 떨어지니 오늘따라 그 따스한 것들이, 그 평범한 사랑들이 몹시 그립다 더보기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83) - 내리사랑 내리사랑 물거품이 튀는 갯바위를 보라 파도의 살점이 부서져 한나절 햇빛처럼 눈부시다 사랑도 물처럼 자신을 깨뜨려야 찬란히 빛나리 마른 뼈들을 적셔 살아나게 하는 힘도 메마른 꽃자리에 파릇파릇 새싹을 틔워 홀로 서게 하는 힘도 만물을 이롭게 하는 물의 지극함이 아니더냐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담담히 흘러 영겁 속에서 빛나는 고요한 섬광들 물처럼 겸손하여 스스로 낮아지며 물처럼 온유하여 다투지 않으며 물처럼 자유로워 얽매이지 않으며 물처럼 한결같아 끝까지 인내하며 물처럼 관대하여 너그러이 감싸주며 물처럼 쉬임 없이 자신을 비워서 사랑하라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그대의 사랑 흘려보내라 더보기
김경중 시인의 아름다운 시 100선(85) - 설중매 설중매 창밖은 아직도 북풍한설 매서운데 맘속에 청정한 홍매화 한 송이 품으니 꿈에도 그리던 님의 얼굴 연분홍 봄빛으로 살아나네 멀리서 오는 봄은 칼바람 찬서리에 잰 걸음 주춤해도 雪中에 梅香이 그윽하니 님이여, 붉은 놀 푸른 달 아래 굽이굽이 휘어진 산길 돌아 한 걸음 한 걸음 사뿐히 즈려밟고 바삐 오소서 더보기